그래서 AI는 도대체 언제 SaaS를 대체한다는건가?
‘코딩’을 대신해주는 인공지능 에이전트(AI Agent)가 나오자 마자 전 세계 매체들이 ‘이제 SaaS는 망했다’ 라고 외치기 시작했다. Forbes 누구나 ‘딸깍’만 하면 SaaS를 만들 수 있다며, SaaS 회사들은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었고, 떨어지는 SaaS 회사 주식 시세를 트래킹하는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FubarDaily 그래서 인공지능은 도대체 언제 SaaS를 대체한다는 것인가? 회사마다 수십만원씩 내고 있는 SaaS 서비스 구독료는 언제 인공지능이 ‘딸깍’ 한번에 무료로 대체해 줄 것인가? 이 이야기가 나온 지 반년이 지나도록 마땅한 대체제는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총대 매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가 정말 대체되기는 하는건가 궁금해서 내가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만드는 사람들이 늘어나긴 했다.
여기저기서 인공지능으로 Jira나 Linear, monday를 대체하는 툴을 만들었다고 자랑하곤 했다. 하지만 붐이 일어나지도, 실제로 대체할 만한 품질의 제품이 나오지도 않았다. 유사제품만 마구 나왔을 뿐이다. 마치 클론 서비스 개발이 개발 역량 강화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여겨지던 한 때, 여기저기서 클론 서비스 코드가 쏟아져 나왔을 때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클론은 잘 했는데, 가져다 쓸 수는 없고, 만든 이도 그냥 방치해버리는 버려진 코드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나는 그런 클론을 만들고 싶은게 아니었다. 누군가 가져다 쓸 정도는 되어야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설치형’이라는 이름을 붙여보았다. 이런 이름을 붙이고 목표를 설정하는 행위는 ‘딸깍’에 움직이는 인공지능이 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는 일이었다.
딸깍 한번으로는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다
처음에는 “ㅇㅇ 서비스같은걸 만들어줘” 라고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그럴싸하게 기존 서비스를 베낀 페이지가 나왔다. 하지만 코딩을 제일 잘한다는 인공지능 모델조차 제대로 작동하는 서비스를 만들지는 못했다. 오류가 속출했다. 기본 설정을 하는데에는 인간의 도움이 필요했고, 모든 설정을 마치더라도 여전히 오류 투성이라 디버깅은 결국 사람이 해주어야 했다. 나는 설치형 이슈 트래커와 설치형 협업 채팅 툴을 만들어달라고 지시했는데, 로그인 구현을 위한 엑세스 키 하나를 설정하는데에도 그 방법을 안내하는 페이지 하나는 또 따로 생성시켜야 했다. 테스트 케이스와 시나리오를 만든다 한들 인공지능이 놓치는 부분들이 속출했다. 일정 부분은 분명히 기존의 개발 지식이 요구되었다.
나야 이쪽 일을 했으니까 인공지능이 어디까지 구현했겠군-하고 짐작하며 찾아갔지만, 배경지식이 없는 어떤 이들에게는 곤란한 과정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아니라 사양과 UX 설계가 필요하다
핵심 기능을 잘 구현했다 하더라도, SaaS의 락인 효과는 습관을 만드는 세밀한 UX에서 나온다. 작지만 꼭 필요한 사양들이 사용자를 사로잡는다. 인공지능은 여기까지 스스로 구현해내지는 못했다. 필요한 연동 기능들부터 IME 지원까지 미묘한 지점에서 불편한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멘션창에서 스크롤이 되면 선택 후에 스크롤이 서서히 되도록 해줘. 동시에 진행되니 깜빡이는거로 보여져.” 또는 “위 아래를 이동할때 선택이 해제되는 항목의 글자색이 깜빡여. 깜빡임이 없게 해줘.” “클립보드에서 붙여넣기하면 허용된 경우를 제외하고서 나머지 태그나 attr, 그리고 인라인 스타일을 모조리 제거해” 같은 요구가 추가로 필요했다. 특히 한국어로 된 서비스를 만든다면 반드시 이런 프롬프트를 덧붙여줘야 한다. “한글 입력을 하다가 isComposing 상태에서 엔터를 치면 마지막 입력한 글자가 두 번 입력돼. isComposing 상태에서 블럭 안에 있는 한글이 반복되지 않게 고쳐줘.” 그러지 않으면 한글 입력이 잘 안된다는 버그 리포트를 받게 될 것이다.
이런 문제 해결 노하우는 수십여 년간 IT서비스를 개발 해온 개발자라면 익숙하지만, 기능만 구현하는 인공지능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는 비효율 더미일 것이다. 사양과 시나리오를 세세히 설명하고 나서야 기능은 완성된다. 모든 개발자/디자이너/기획자가 코드를 쓸 수 있는 시대에, 메이커로 변신하는 저마다가 갖추어야 할 역량에 이 세밀한 사양과 UX를 설계하는 역량이 새로이 요구되는 셈이다. 인공지능은 여기까지 알아서 해주진 못하며, 아마도 꽤 오랜 기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잠깐, 인공지능이 개발자를 대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인간의 새로운 역할이 요구된다? 인간의 노하우가 필요하다?
자가복제의 열화
국회 정치자금 지출내역 엑셀파일을 바탕으로 만들었던 restaurant.coroke.net 를 만든 이후, 비슷한 페이지들을 여럿 발견했다. 지도에 주유소 기름값을 표시하거나, 숙박업소 가격을 비교하는 식이었는데, 클릭 트리거가 되는 동그라미 모양이 거의 다 똑같았다. “ㅇㅇ 사이트의 UI를 참고해” 또는 “ㅇㅇ 사이트의 코드를 참고해” 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했다거나 “히트맵으로 구현해줘”라고만 시키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나는 히트맵을 구현해달라고 프롬프트를 넣었는데, 다른 이들도 똑같은 프롬프트를 넣고 별다른 커스터마이징을 하지 않아 인공지능의 디자인 감각으로 만들어진 사이트가 여럿 쏟아진 것이다. 덕분에 주유소 기름값을 말풍선 UI 대신 히트맵으로 표시하는 사이트가 여럿 발견되었다. 화면이 겹쳐질 일이 적은 주유소 기름값 같은 정보는 말풍선 UI을 쓰도록 하자.
인공지능 코딩 시대에 경영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빠른 개발’ ‘비용 절감’ 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독창성이나 창의성이 들어갈 여지는 많지 않다. 20년 전에도 ‘ㅇㅇ 사이트를 베끼자’ 같은 일이 횡횡했고, 종종 카피캣 내지는 표절 시비가 붙곤 했다. 기능만 구현하면 되는 제품에서 저작권에서 자유로운 성공사례를 쫓아 모방하는 것은 ‘빠른 구현’의 비결이 된다. 그렇게, 인공지능이 서로를 참조하다 열화되듯, 인간의 인공지능 생성물도 이상하리만치 자기참조로 열화되는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딸깍’ 수십번으로 만들어낸 내 앞의 생성물은 본질적으로 원본의 열화버전이다. 여기에 독창성을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수고’가 들어가는 일이다. 남들과 같지 않으려면 손을 대야 한다. 독창성이 제품의 경쟁력 내지는 기업의 경쟁력이 되게 하는 것은 지난한 노력을 수반한다. 잠깐, 인공지능이 PM을 대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디자이너를 대체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문제의 그 노력은 누가 하는가?
대체하려던 서비스에는 없는 소소한 기능들을 더 넣고 나서야, 나는 이 생성물에 내 크레딧을 넣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의 커스터마이징이 덧붙여져야 이 생성물이 그저 인공지능 생성물이 아닌 나의 수고가 곁들여진 창작물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
인공지능의 본질적 정체성을 다시 생각한다. 인공지능은 모방을 할 뿐 창조를 하지 않는다. AGI에 다다른 인공지능이 나온다 한들, 추론과 분석을 잘 하지 창조를 해낸다는 이야기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니 이 역할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어떤 직업은 분명 사라질 위기에 있다. 언론사 망하게 하는 봇 만들기 글을 보라. 그러나 그 직업의 본질을 되돌아본다면 어느 직종이든, 특히 IT분야 직업이 쉽사리 사라지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공지능 코딩 에이전트와 함께 몇 시간을 들여 SaaS를 대체하는 서비스를 만들면서 몇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이 정도로 수고스럽게 머리를 써갈 거면 그냥 돈 주고 기성 제품을 쓰겠다 2) 이 정도로 수고스럽게 시간을 들여 SaaS 모방품을 만들 시간에 더 가치있는 일을 하는게 낫지 않나 3) 이걸 회사 일로 하는 거라면 그 시간에 가치 창출을 더 많이 할 회사 제품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좋겠다. 등등. SaaS 주가는 떨어질지언정 SaaS는 쉽게 망하지 않을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monday를 복제한 서비스를 만든다 한들 monday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여는 HR 컨퍼런스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는 없다. 내가 Slack을 복제한 서비스를 만들어 사업을 한다 한들 Slack의 귀여운 뱃지까지 발주해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는 못한다. 영업과 관계는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없고, 그래서 SaaS 사업의 본질은 코딩 에이전트로 대체되지 않는다.
인간의 본질적 정체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타인을 귀히 여기기보다 타인의 일자리가 없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내비치고, 타인의 노동을 폄하하고, 나아가 타인을 없애 버리고 싶어 하는 속마음을 버젓이 전시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공지능보다 나은 것이 무엇인가. 인공지능 때문에 사람들이 직업을 잃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직업을 빼앗거나 일자리를 줄이고 싶어하는 특정 직군 인간들의 욕망이 직업을 사라지게 하고 있는건 아닐까? FOMO를 퍼트리는 인간의 본성을 극복할 다른 인간의 본성은 언제쯤 FOMO를 이기게 될까?
인공지능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본 제품은 모두에게 공개하기로 했다. 나는 세일즈포스나 아틀라시안이 아니니까. 그래도 유사 제품을 만들려고 인공지능 에이전트와 함께 한 시간은 즐거웠다. 특히나 세밀한 부분마다 도메인 지식이나 개발 경험을 되살렸던 과정 또한 내가 아직 쓸모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즐거웠다.
github.com/rainygirl/boxer - Jira를 참조한 이슈 트래커
- 데모 : boxer.coroke.net
github.com/rainygirl/tight - Slack을 참조한 협업 채팅도구
- 데모 : tight.corok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