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회고
직전 글을 확인하니 구직중이라고 써있다. 그렇다. 2024년은 실컷 놀았던 해로 기억한다. 홍콩과 뉴욕, 보스톤, 런던을 다녀왔다. 미주는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실제로 보고 나니 국가번호 1을 쓰는 국가는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하고 생각이 복잡해졌다. 이민을 가야겠다는 생각은 도리어 줄어들었다. 한쪽 면만 보고 일반화하는건 그닥 바람직하지 않지만, 나는 도시를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 뉴욕의 지독한 지린내와 마리화나 냄새에 즐거움을 느끼진 못할 것 같았다. 보스톤은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데 어쩐지 학생이라는 정체성으로 지내는 것이 알맞아보이는 도시였다. 늘 나의 정체성을 방랑자로 규정하곤 했는데, 2024년에는 마음에 드는 ‘내 도시’가 사라져버린 느낌이다. 도쿄도, 런던도, 익숙한 여행 도시이지만 머무를 고향같은건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 도시’ 자리는 현재 비어있다.
2024년 가을쯤 한 회사를 들어가서 2025년 봄에 나왔다. 그리고 몇 주 되지도 않아 새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예기치 않게 이번 회사는 지금까지 다녔던 회사 중에선 가장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았는데, 1) 전일 재택이라 집에서 차를 내려마시며 고양이를 안고서 일할 수 있고 2) 적당한 거리에서 좋아하는 제품을 소신껏 키울 수 있으며 3) 개발팀을 포함해 제품 조직 구성원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여 빌런때문에 버틀넥이 생기는 일이 없고 4) 얼리 스테이지에서 시작해서 서비스 지표가 성장하는 것을 체감하며 보람을 느끼고 있어서, 였다. 열에 하나는 얻어걸리겠지 하던 그 얻어걸린 케이스구나 라며 감사하게 생각하며 다니고 있다. 물론 나도 조금은 바뀌었다. 1) 가스라이팅이나 번아웃과 가까워질 만큼 일에 몰입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2) 덕질이라도 해서 더더욱 일에 매몰되지 않게 수시로 주의를 환기한다. 3) 더 이상 조직을 위해 내 이름과 얼굴을 팔지 않는다. 이정도 원칙이 세워지고 나니 실망하는 일도 적어졌다.
주변인들의 직장이 저마다 재택을 폐지하고 미친 탑다운에 무기력하게 돌아간다는 소식을 들을때마다 사뭇 슬프곤 한다. 내가 처음 회사를 다닐 때는 내가 다녔던 회사가 사람들의 선망이 되던 곳이었다. 다니는 것 만으로도 설레이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자부심에 늘 들떠있었다. 그런 마음으로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저마다 없는 기대를 억지로 만들게 하지 말고, 사람을 속여서 들뜨게 하지 않아도 들뜰만한 일터가 되어야 한다. 다행히 우리 공장은 지표 그 자체로도 들뜨고 있어 심란할 일이 이제까지는 없었다. 제품을 잘 만들면, 숫자가 노력만큼 올라가는 경험은 정말 드문 일이다. 올해에도 우리 공장이 잘 성장하기를.
취미란 것이 새로 생겼더랬다. 일단 2024년에 실컷 놀 적에 느닷없이 오토바이 한대를 떠안았다. 타던가, 아니면 중고시장에 내다 팔라는 주문을 받았다. 이륜차 중고 시장에서 실랑이하는게 더 귀찮았던 나는 그날부로 운전학원을 등록하고 2종 소형 면허를 땄다. 이런 기세라면 1종 대형도 딸 수 있을 것 같다. 2024년 회사로 출근할 땐 시내에서 실컷 넘어졌는데 운전미숙이 아니라 과로로 인한 기절(?)이 더 많았다. 웃기게도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하-후-하-후-아유오케이? 하고 물어보아주는 다정한 사람들이 있어 서울은 (종로는) 그래도 괜찮구나 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병원에 갈때도 장을 볼 때도 가끔 회사 아지트로 출근할 때도 곧잘 잘 탄다.
호빵맥이라 불리우는 iMac G4 를 입양했다. G3을 입양할까 두부맥을 입양할까 매킨토시를 입양할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제일 예쁜 G4를 장만하기로 마음먹었다. 말이 예쁘다지, 인텔도 아니고 PowerPC CPU로 돌아가는 머신에, SATA나 SCSI도 아닌 EIDE 방식의 스토리지를 쓰고 USB는 1.1만 지원하는 기계이다. 일단 하드디스크를 바꾸었고, 메모리를 업그레이드했고 (DDR1 메모리도 아니다) Mac OS 9.2와 Mac OS X Tiger 를 설치하고, SSH 서버를 올리고, 360p짜리 피너츠 애니메이션을 넣고, mp3를 왕창 옮겨 iTunes에 넣었다. 미디 키보드도 당근에서 하나 업어와서 호빵맥에 연결해주었다. 종종 피아노 연습하듯 키보드를 친다. 작업공간이 카페가 된 기분이 든다. 기계가 마침내 사망하면 맥미니를 넣고 디스플레이 패널을 바꿔서 되살려주면 되니 걱정이 없다.
바닥에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온 카페트가 깔려있고, 이베이에서 산 NES(Nintendo Entertainment System), 일명 페미콤이 튼튼하게 소리를 낸다. 중고로 업어온 모니터링 스피커는 짱짱한 소리를 낸다. 믹서를 장만했고, 크롬캐스트 두개를 연결해 여러 라디오를 들을 수 있게 했다. 루틴하게 아침에 출근해 티켓을 나누고, 몇개는 내가 치고, 오후에 여러 회의를 참석한 뒤 다시 코드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여러 게임기나 기기들을 만지며 저녁을 보낸다.
그리고 곧, 이 평온함이 깨어질 일이 올 것이다. 이번에 올라타는 파도는 잘 탈 수 있을까? 그 이야기는 아마 2026년 회고에 쓰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