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팀이었다

전 회사를 나오면서 프로젝트 코드 저장소의 README 문서에다가 롤링페이퍼를 쓰자고 했다. 다른건 몰라도 README는 들고가야하니 접근권한은 귀가 전까지 열어두라 이야기했었다.

README 문서의 마지막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배워야겠다거나 닮고싶었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실은 무서운 이야기이다. 섣불리 누군가의 모델이 되어서는 안된다.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이다~라고 여기는 순간부터 자만에 빠진다. 마음은 감사히 다가왔지만, 앞으로도 좀 더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한다는 경고로 읽혔다.

1년 넘게 일하면서 무엇보다도 팀 안에서만큼은 개발하는 팀으로서의 안정감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었다. 처음 합류했을 땐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둘쨋날 업무 메모에는 ‘오너십을 정리해야한다’ 라고 써둘 정도였다. 감내할 수 있는 레거시를 추리고, 예측 가능한 일정을 고정해놓고서 스펙을 정리하고, 유연하게 개발할 수 있는 기술 스택을 고르고, 문서화 골격을 짰다. 원래 나는 그냥 코드만 쓰겠다는 마음으로 이 회사에 들어갔었다. 들어가고 나니 누군가는 코드와 데이터 뿐만 아니라 일을 정리해야했다. 그 일까지 내가 했다. 마침내 서비스는 거의 다 만들어졌고, 관리 업무가 시작되고 있었으며, 정식으로 빛을 볼 날만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세상 일은 늘 뜻대로 되지 않기 마련이다.

10여년 넘게 많은 서비스를 만들고 많은 코드를 써왔지만 그 중 빛을 본 서비스는 나도 손에 꼽을정도이다. 회사가 크든 작든 저마다의 이유로 접히는 프로젝트는 있기 마련이다. 내 자식 같은 코드, 지난 시간과 노력들이 수포로 돌아갔다는게 때로는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매우 잦은 일이고, 개발자 탓은 아니다.

그래서, 제품 출시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건 ‘이걸 만들 줄 아는 사람’ ‘이렇게 일할 줄 아는 사람’ 임을 꾸준히 증명해내는 것이고, 경험을 공유한 사람들끼리 다음 배로 계속 갈아타면 된다는 이야기를 마지막 날 나누었다.

좋은 팀이었다. 나는 정리만 했을 뿐이다. 지난 즐거운 시간들은 오롯이 좋은 동료들을 만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역량도 놀라웠고, 매사에 적극적이었고, 무엇보다도 다정했다. 개발새발 짜고 던지는 코드를 꼼꼼히 채워주었고, 막막한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마리오 게임 스테이지 깨듯 해치워주었다. 그러니, 온전히 동료들만 믿고서 남은 일을 치워둘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만 모여있다면 앞으로도 뭐든 해낼 수 있겠지. <서커스는 끝나도 광대는 남는다>는 말이 이 맥락은 아닌데 나는 그 뜻으로 쓴다. 지금은 아닐지라도, 다시 만나고 싶은 동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