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무게

이름에 실리는 무게라는 것이 있다. 그 무게를 갈망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게된 이후부터 어떤 회사에 합류할지, 어떤 회사를 내 이름을 걸고 소개할 지에 대해 결정하는 데에 조심스러워졌다. 그냥 월급만 받고 살면 좋았을텐데 객기 부리며 까불며 다닌 업보를 뒤늦게 안고 다닌다. 조용히 회사를 다니려 하면 임원이 나타나, 다니는 회사 이름 좀 소셜 프로필에 걸어달라고 종용하고, 재능있는 사람들을 데려와달라고 종용한다.

새로 합류하려던 회사가 순식간에 터져버렸다. 경영진들끼리 다투더니 약속이 바뀌었고, 영입해달라던 이들의 프로세스까지 모조리 취소되었다. 아침에 이 사실을 통보받은 뒤, 그날 밤에는 도로 마음 바꾸었다고 다시 와달라며, 사람들 데려와달라고 한번도 마음을 달리한 적 없다며 전날 다투던 경영진들이 한명씩 다시 메일을 보내왔다. 이런 일이 생길까봐 그 회사의 모든 경영진들을 직접 찾아가 만나보았고, 다시한번 만나 계획을 확인하였으며, 그 이후에서야 조심스레 한명씩 합류를 제안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신뢰가 사라져버렸다. 나 역시도 합류를 제안한 이들로부터 신뢰를 잃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종종 코파운더가 불안정한 행동을 보인다면, 그런 회사에 어떻게 다른 사람들까지 소개시켜주겠는가. 그 회사에 재직중인 분들은 어서 탈출하시길.

이런 회사를 두번 겪어본 적 있다. 한번만 믿어달라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용서해달라고 하는 말들로 상황모면만 노리는 경영자들이었다. 하나같이 또다시 뒷통수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 직장에서도 부하직원이 자살한다거나 하는 사고를 낸 적이 많아서 주변에서도 합류를 말릴 정도였는데, “형 한번 믿어봐”나 “님하고 해야 할 수 있을거같아요” 같은 감언이설에 나는 또 넘어갔었다. 이렇게 늙다가는 사기당한 옥장판만 집안에 왕창 채워둘 기세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는게 좋았다. 신임을 얻고 통제가능한 범위가 많아지고 권한이 많아지는 것도 좋았다. 그 권한으로 키울 수 있는 일도, 베풀 수 있는 일도 많으니까. 스타텁창업은 다시는 안하고 싶어서 딱 이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짝이 맞는 오너를 찾는건 어려운 확률의 게임이다. 모든 영입이 그렇지만 나에게 합류를 권했던 분은 지독하게 나에게 맞춤형으로 제안을 했었다. 개발팀 성비를 5:5로 맞추고 싶다고, 좋은 제품팀을 만들고싶다고, 싫은 사람은 못봐도 좋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고, 해외 개발팀을 맡아달라고… 생각해보니 전에도 이 문구로 넘어갔다가 “투자에 필요한 개발자 이름만 필요했다” 며 조용히 나갈 것을 권유받기도 했다. 늘어나는 권한 만큼 책임도 커지기 마련이다. 책임은 부채이다. 책임을 과하게 지는 것은 이제 더는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내가 떠안고 해야겠다고 여겨지는 사회적인(?) 역할은 이미 충분히 다 한 것 같다. 재능있는 친구들이 반짝반짝해지는 걸 한번 더 도우려는 욕심 같은것도 내 손을 떠난 일임을 받아들여야한다. 사회윤리고 뭐고 제끼고 그냥 의미없이 경영자가 시키는 일만 하는 것도 어쩌면 개개인에게는 유익한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도 기대치를 낮출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