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디어 스타트업에 대한 고별사
2010년도 영미권에는 디지털 only를 내건 새로운 미디어 브랜드들이 기성 언론 브랜드보다 더 큰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Buzzfeed니 Upworty니 Gizmodo니 Vox니 하는 곳들이 뉴욕타임즈, 월스트리트저널을 능가하는 트래픽을 쓸어 담았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들이 퍼져나가고, 매체가 콘텐츠를 바이럴 시킬 수 있는 역사상 가장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급부상한 곳들이 이들 매체였다. 한국에서도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 칭해지는 똑똑한 청년들이 저마다의 매체 브랜드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카드뉴스라는 새로운 포맷이 등장했고, 그 포맷을 만든 이들이 이리저리 모여 소위 미디어 스타트업까지 여럿 만들었다.
혜성같이 등장했다 사라진 한국의 미디어 스타트업들은 저마다 놀라운 성과를 이루어냈다. 트래픽이 조선/중앙일보를 능가한 곳도 있었고, 디지털 유료 구독자 수가 포털 유료 구독 서비스 실적을 능가한 곳도 있었다. 실은 이 지점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스타트업은 돈을 잘 벌었다는 것을 성과로 내밀어야 할 텐데, 미디어란 돈을 잘 번다고 소문날 게 아니라 좋은 아젠다를 잘 발굴하고 좋은 팬덤이 모여있다는 지점을 자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널리즘과 밥벌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 재래 매체들도 겪는 일이라지만, 비즈니스모델의 속성이 전통 저널리즘 산업이 아니라 스타트업으로 분류된 미디어 조직은 더 큰 정체성 혼란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재래 매체도 이 갈등에서 무너지곤 하는데, 바닥부터 시작하는 신생 매체는 독이 든 성배를 먼저 받고 시작하는 셈이다.
여러 미디어 스타트업에 발을 걸치거나 목격한 바로 말하자면, 한국에서 미디어와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동등하게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수년간 운영되어왔던 신생 매체들이 사라지면서 ‘파산’이 아니라 ‘해산’을 했던 것은 돈이 없어 망해서가 아니라 ‘스타트업’씬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종종 언급했듯, 스타트업은 본질적으로 J커브라는 성장곡선을 그려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어딘가로 엑싯하면서 인수하는 회사의 밸류를 끌어올리기 위한 수단이 되어주어야 한다. J커브가 되려면 콘텐츠만 팔아서는 답이 없다. 후자는 서비스 또는 구성원이 사라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미디어 스타트업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스타트업에게 비즈니스모델을 만들라는 것은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을 말한다.
사실 미디어 스타트업의 현금흐름 규모는 독립언론들의 흐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거대하고 역동적이다. 미래를 걱정하다 하나둘 사라졌던 주간지 월간지 회사들이 보면 기함할만한 현금흐름이었다. 미디어 활동가라면 이 정도 현금흐름과 팬덤에 자부심을 가지고 꾸준히 매체를 운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타트업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투자 자본이 들어온 스타트업은 돈을 넣어준 분들의 주문에 꾸준히 응답해야 한다. 팬덤이 더 큰 수익으로 이어져야 한다. J커브의 가능성을 발견할 만한 실험을 계속 수행해야만 한다. 구독자수가 몇천이 아니라 몇백만이 되어야 한다. 구독료로 linear하게 성장하는게 아니라 구독료 이상의 구매력을 지닌 고객층을 확보했음을 증명해내야한다. 조선/중앙일보 트래픽을 넘는데 안주하는게 아니라 포털 첫화면을 넘는 광고수익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흑자였던 자본을 새 실험에 다시 투입하고, 필요하다면 예쁜 성장 장표를 만들기 위해 의도된 적자를 만들어야 한다. 다음 투자라운드로 밸류를 끌어올릴 수 없다면 몰려온 재능있는 인재들을 다른 포트폴리오사에 내어주어야 한다. 투자라운드를 새로 돌려는 미디어스타트업 주변에는 들판의 동물이 시체가 되기를 기다리는 까마귀 떼들처럼 재능있는 크리에이터들을 데려가려는 이들이 몰려오곤 했다.
그러니 미디어로서의 속성을 양보할 수 없었던, 2010년대에 유행했던 미디어 스타트업이란, 본질적으로 ‘사라지는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닷페이스의 해산 결정을 두고 도전이 성공했니 실패했니 하나마나 한 소리를 얹는 이들을 또 마주해야했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브랜드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이들이 어찌나 말 얹고 싶은 욕망을 참지를 못하는지, 새로운 매체가 등장할 때는 1도 언급 안 하려고 애쓰다가, 문 닫을 때는 애도도 한줄 없는 요란한 평론들이 쏟아졌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수년간 미디어 스타트업을 일구어온 이들을 불러서 ‘우리 회사에서 인턴 해볼래요?’ 같은 소리나 했던 이들이 있었다. ‘닷페이스 같은 걸 우리도 만들어야’라는 이야기를 해댔던 수많은 한국 중앙일간지 간부들을 기억한다. 닷페이스를 인수하는 게 아니라 비슷하게 만들어서 우리의 실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던 중견 기자들도 기억한다. 닷페이스와 같은 친구들이 처음 도전을 할때부터 최근까지, ‘성공하려면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훈수두던 아저씨들이 한 트럭은 몰려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들 중 일부는 이들 회사의 진로를 바꿀만한 결정에 관여하기까지 했다.
그 무리를 종종 강연장에서 마주치곤 했는데, 곧잘 나에게 “저 친구들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 “기업이 영속하려면 뫄뫄를 갖춰야 하는데” “지금 저 아젠다를 신경 쓸 때가 아니라 크게 튀려면 이걸 신경 써야 하는데” 등의 푸념을 늘어놓곤 했었다. 큰돈 넣고 지분을 갖고서 응원하던 분도 말을 아끼건만, (언론사 경영진이나 기자도 아니면서) ‘멘토’니 ‘업계 선배’니 자칭 ‘뉴미디어 전문가’니 자처한 이들이다.
그들에게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이렇게 답했었다.
“젊은 친구들 젊은 시절에 짧게 불타오르며 역할을 다하고서 마치면 되지, 하고 싶으면 당신이 직접 하던가?”
저마다 짧게 불타오르며 역할을 다하고 마쳤다고 생각한다.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은 원래 그 일을 해야 마땅한 재산 더 많고 나이 더 많은 이들의 몫이다. 소외된 목소리를 발굴하는 일은, 실은 공영 매체가 해야 했었던 일이다. 반짝반짝한 이들은 본인들의 빛남을 널리 알린 뒤 응당 그에 맞는 대우를 받으며 더 좋은 시간을 보내면 된다. 카르텔은 순순히 물러나는 법이 없고, 공고한 벽을 깨고 싶다면 아이들에게 짱돌만 쥐여주고 관전만 해서는 안된다.
이 글은 수년간 어느 굉장한 미디어를 새로 만들고 일구어왔던 몇 친구들에게 보내는 글이다. 수많은 소음들을 뒤로하고 지금까지 일구어왔던 길이 누구도 열지 못했던 길이었으며, 그 시간과 벅찬 감정들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라는 점을 간직해주었으면 좋겠다. 그게 성공이지 뭐가 성공인가. 다른 이들이 선망하는 다른 성공은 다른 이들 몫으로 넘기면 될 것이다.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숙제를 남기고 먼저 떠나는 모습은 늘 아름답다. 남은 이들은 알아서 숙제를 풀도록 하자.
“입사한 지 20년쯤 뒤에 쓴 글이지만 거꾸로 지금부터 보면 또한 20년 가까이 된 글이다. 그러니까 전후로 40년 가까이 되는 시간 속에서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 전 JTBC 보도담당 사장이었던 손석희의 저서 <장면들> 중에서
“아 <버즈피드>의 시대요. <업워시> 같은 사이트의 인기여 - 하지만 잠깐의 유행은 2014년 즈음에 끝나버렸다. 오늘날 페이스북에서 가장 많은 조회 수를 기록하는 정치 의견들은 열심히,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대하고 미워하고 비난하겠다고 단단히 결심한 듯한 글들이다. 사랑스러웠고 독특한 방식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웹사이트들인 <더 아울>, <더 토스트>, <그랜트랜드>는 모두 공중분해되었다. 각각의 매체들이 안녕을 고할 때마다 친밀감을 기반으로 하여 상생하려는 목표를 지닌 정체성은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사실을 또다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 전 Jezebel 부편집장이었던 Jia Tolentino의 저서 <트릭 미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