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장이란 무엇인가

미디어 스타트업에서 투자유치를 같이 다닐적 투자사를 만날때마다 듣던 질문은 ‘지금 서비스중인 콘텐츠들이 너무 정치적이지 않나요? 저희는 정치적인 메시지에 연루되는건 좀…’ 였습니다. 정치적인 콘텐츠로는 생리컵 리뷰, 가사노동의 불균형 같은 콘텐츠가 지목되었죠. 이제 생리컵은 아무렇지도 않게 드럭스토어에서 판매되고 있고, 집안일 떠넘기는 남편은 조용히 죽여야할 대상으로 코믹영화에서 그려지곤 합니다. 불과 5년 사이에 벌어진 변화네요. 돈을 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독자들은 대개 어떤 정치적 지향을 누군가 대신 조리있게 이야기해주길 바라고, 그로 인한 효능감을 기대하며, 이를 잘 구현하는 매체를 여러개 가지는 것이 미디어 비즈니스의 속성이라고 투자사에게 설명하곤 했습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투자사는 정확히 이해하곤 했어요. 대신 다음과 같은 질문이 뒤따랐습니다. ‘투자사가 원하는 메시지도 많이 있는데 앞으로 이를 반영해줄 수 있나요? 예를 들어 주52시간제 폐지라거나, 쉬운 해고라거나…’

기업가가 비정치적이고 스타트업 업계가 비정치적이라는 이야기는 신화에요. 실리콘밸리의 어떤 투자사 대표는 ‘테크 혁신을 사람들이 겁내지 않게끔 글을 써줄’ 비평가를 꾸준히 키우려 노력하고 급기야 자기 편을 들어줄 새로운 미디어그룹을 만들었다더군요. 한국에도, 미국에도, 그렇게 매수당한 매체와 필자들이 여기저기 많이 지면을 차지하며 신의 놀이마냥 여론을 만들고 있어요. 페이팔 창업자가 노골적으로 트럼프를 밀어준 것은 이제 전 세계가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미국에만 있었던 일일까요. 한국에서도 재벌은 저마다 언론사를 하나씩 만들었고, 어떤 재벌 회장은 아예 대선 출마까지 할 정도였으며, 지금도 한국 정치지형에선 어떤 기업가가 ‘혁신가’ 라고 스스로를 포장하며 정당을 이끌고 있어요. 기업도 정치적일 수 있고 기업가는 특히 꽤나 정치적입니다.

비정치적임을 지향한다는 이야기는 실은 어떤 정치지향을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애둘러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상호 신뢰가 생기면서부터 비정치라는 개념은 펑 사라지고, 불과 몇 분만에 노골적으로 다른 정치지향을 구현하자는 이야기가 오고갑니다. 스타트업 업계 뿐만 아니라 큰 언론사들도 형편없는 서비스 품질에도 불구하고 광고주의 정치 지향에 충실할 것임이 기대되어 많은 광고수익을 올리며 연명해왔어요. 돈줄을 쥐고 있는 이의 영향력이라는건 늘 이랬습니다. 저널리즘 분야만 그렇지도 않아요. 누구나 글을 올리고 메이저 언론매체 못지않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소셜네트워크 시대에도 돈줄은 어떤 의견을 밝히거나 밝히지 않는데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몇일 사이 타임라인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이 그렇습니다. 모 스타트업 임직원들은 내심 다른 견해가 있다 하더라도 아마도 월급을 주는 사장님의 의견이 맞다고 좋아요를 누르고, 응원글을 쓸 것입니다. 모 투자사의 포트폴리오사 임원들도 마찬가지로 좋아요를 눌러야 할 것입니다. 좋아요를 누른 사장님 심기를 봐가며 직원들도 발언을 자제하고 좀 더 열심히 야근하는 모습을 보이려 하겠지요. 네. 노골적으로 매수당한게 아니더라도 위계가 생긴 이상 어쩔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이의 발화는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 모든 발언이 정치적일 수 밖에 없거든요. 소셜에 쓰는 가벼운 글이 정치적이지 않은 글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모든 행위가 극도로 정치적인 행위일 수 밖에 없으며, 그렇다면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공론장이 아니에요. 그 사장님 회사가 평소에 주52시간제를 얼마나 우습게 보고 있었는지 구성원들이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조사가 들어가야할 부분입니다.

자본이란게 좋긴 좋습니다. 내 편이 되어줄 사람조차도 매수할 수 있고, 나와 반대되는 편의 발화를 입막음할 수 있거든요. 공론장은 그런 얽힘이 없을 때에만 비로소 존재할 수 있습니다. 투자사와 피투자사 끼리의 공론장이 무슨 공론장이에요 세 과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