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기술의 습격

5년 전 러시아의 한 다리미에서 손톱만한 무선 도청 해킹 장치가 발견된 일이 있었다. 다리미 주변의 취약한 와이파이를 잡고 마이크로 주변 대화를 녹음해 그 파일을 인터넷 어딘가로 보내는 것이 이 장치의 원리였다. 이후 러시아 당국이 중국산 가전제품을 수거해 조사했더니 다리미뿐만 아니라 전기주전자와 가정용 전화기에서도 소형 무선 도청 해킹 장치가 나왔다.

다리미에 들어간 문제의 도청 해킹 장치는 단돈 몇만원대의 와이파이 마이크로컨트롤러 기판에다 작은 마이크를 심고 프로그래밍 코드만 넣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장치였다. 손톱만한 크기는 단가를 고려한 설계의 결과일 뿐, 필요하다면 그보다도 더 작게 만들 수 있다. 뚱뚱했던 브라운관 텔레비전이 납작한 텔레비전이 되고, 팔뚝만한 휴대전화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이 되었듯, 기술은 언제나 소형화를 지향해왔다. 이 작은 기판에 센서를 달면 온도계가 되고, 모터를 달면 로봇이 되며, 마이크를 달면 녹음장치가 되고, 카메라를 달면 촬영장비가 된다. 문제는 이 장치를 도청에 쓰면 도청장치가 되고, 나쁜 촬영에 쓰면 몰카가 된다는 점에서 시작된다. 인터넷에는 몇 가지 재료를 구해다가 ‘스마트 홈 카메라’를 직접 만드는 강좌가 수도 없이 널려 있다. 그 카메라가 애완동물을 찍는다면 ‘스마트 홈’ 카메라가 되겠고, 나쁜 목적으로 쓰인다면 ‘몰카’가 될 것이다.

공중화장실 여성 칸에 무수히 많은 구멍을 두고 ‘그 정도 구멍에는 몰카가 들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었다. 순 거짓말이다. ‘그 정도 구멍’에 들어간 몰카로 촬영된 영상이 인터넷에 이미 수도 없이 널려 있다. 피해자들에겐 기도 안 차는 변명이다. ‘그 정도 구멍’보다 더 작은 펜형, 단추형, 나사형 몰카 장비도 이미 시중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매장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버젓이 판매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이는 촬영장비에 들어가는 배터리나 저장장치가 그렇게 작을 리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지만, 이 역시 동네 편의점만 들러도 뻔히 알 수 있는 거짓말이다. 새끼손가락 손톱보다 더 작고 얇은 메모리카드는 16기가 용량이 단돈 7천원대다. 동전만한 배터리로 작동하는 위치추적장치는 단돈 3만원이다. 소형화된 메모리카드조차 쓰지 않고 무선으로 클라우드 공간에 영상을 전송하는 카메라는 이미 5년 전부터 시판되는 중이다.

시제품으로 나온 몰카장비에 대한 판매 규제를 정부가 추진하고 있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의 이력을 모두 기록해 무분별한 유통 자체를 막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필요한 조치이며 너무 늦었다 싶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적발되고 있는 몰카장비들을 보면 조악하게 조립된 장비들도 종종 발견된다. 모듈이나 기술의 유통까지 행정력이 막아낼 방법은 많지 않다. 과거 어린이들이 기판에다 저항을 끼워 납땜을 해서 라디오를 조립했다면 요즘 아이들은 컨트롤러보드에 와이파이칩셋과 카메라모듈을 끼우고 코드를 입력해 촬영장비를 만든다. 사제 총기보다 더 쉽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도청장치이고 몰카인 시대가 와버린 것이다. 이 기술이 한국에 만연한 강간문화와 결합되어 포르노 산업의 일부가 되고 있다. 좋은 데 쓰라고 만든 기술을 나쁜 데에다 쓰는 ‘손재주 나쁜 이들’을 더욱 엄히 처벌해야 몰려오는 신기술의 습격에서 시민들의 일상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