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가 묻는다
인형뽑기방에서 인형을 잘 뽑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인형을 뽑는 방법은 이렇다. 기계에 동전을 넣은 뒤, 첫 단추를 누르면서 동시에 스마트폰 타이머도 켠다. 그리고 인형을 잡기 위해 두번째 단추를 누를 때에도 동시에 스마트폰 타이머를 누른다. 이 친구는 경과시간을 줄이거나 늘려가며 집게의 위치를 맞추고 기어이 인형을 뽑아낸다. 이 친구가 타이머의 도움을 받아 인형을 뽑은 것은 반칙일까 아닐까?
구글 글라스 같은 증강현실 안경을 쓰고 인형을 뽑는다고 생각해보자. 카메라로 탁자의 크기를 재는 기술, 움직이는 공의 속도를 재는 기술, 인형을 인식하는 기술 정도는 이미 개발되어 있다. 증강현실 안경에 달린 카메라가 인형뽑기 기계가 움직이는 속도를 잰 뒤, 착용자에게 적절한 시점에 버튼을 누르라고 알려주면 인형을 뽑는 건 더욱 쉬워질 것이다. 이 경우는 인형뽑기방 주인 입장에서 업무방해에 해당할까?
전 산업 분야에 걸쳐 프로그래밍된 동작이 인간의 동작을 대체하고 있다. 어느 언론사는 이미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기사를 쓰고 있다. 스포츠나 경제, 날씨 기사처럼 문장 형식이 대동소이한 기사 위주로 기계가 글을 쓰기 시작하더니, 최근 어느 언론사는 포털 인기검색어를 파악해 관련 기사를 작성 송고하는 로봇을 만들었다. 이것도 일종의 매크로이다. 뉴스 댓글에 달리는 매크로를 불법으로 보아야 할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오가는 와중에 뉴스가 매크로로 작성된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할까? 포털 입장에서 이 경우는 댓글 조작처럼 업무방해에 해당할까?
말을 알아듣는 스피커에게 프라이드치킨을 시켜 달라고 외치면 몇 분 뒤 치킨이 집으로 배달된다. 기계가 사람 대신 배달음식 주문도 하는 시대다. 만약 이 스피커에게 명절 기차표를 예매해 달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전국 가정마다 인공지능 스피커들이 너도나도 기차표를 예매하게 된다면 누구에게 먼저 기차표를 발부해야 할까? 기계가 대신 기차표를 예매해줄 수 있는 이들 말고, 서울역 매표소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들에게는 표를 살 수 있는 기회가 공평하게 주어질까? 만일 매표소를 방문하는 사람을 위한 기차표를 기계 몫과 구분해 따로 떼어다 준다면 전체 좌석 중 몇 퍼센트나 할당해야 공평할까?
이번주에도 나는 매크로 개발을 의뢰받았다. ‘드루킹’ 파문으로 매크로에 대해 물어보는 기자들도 많았다. 젊은 기자에겐 슬쩍 물어본다. “대학 수강신청 때 매크로 안 써보셨어요?” 열이면 일곱은 본인이 써봤거나, 주변 친구가 썼다고 한다. 아이돌 단독콘서트 티켓 예매 때 매크로를 써본 기자도 꽤 있었다. 실은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명절 기차예매나 선착순 콘도 예매 때 매크로 프로그램을 몰래 만들어 써왔다.
어디까지가 불법인지에 대한 논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도 전에 벌써 초중고교에선 코딩교육이 진행되고 있다. 코딩교육 커리큘럼 대부분이 매크로 알고리즘을 짜는 과정이다. 몇 년 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모두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기계를 다루는 기술을 거머쥔 이가 더 많은 기회를 얻는 시대가 이미 우리 곁으로 밀려들어온 지 오래다. 이런 디지털 문명에서 여론 시장을, 민주주의를 매크로로부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아니, 당장 곧 동이 날 프라이드치킨을 옆집 스마트스피커로부터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우리는 이 근본적인 질문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