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 경쟁

‘리젠’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최근의’란 뜻을 가진 영어 단어에서 유래된 용어다. 보통 ‘리젠’은 인터넷 게시판이나 뉴스 댓글에 표시되는 최신 게시물 목록을 가리킨다. ‘어디가 더 리젠이 빠르다’라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리젠을 장악해야 한다’ ‘리젠을 밀어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한다.

리젠이 주목을 받는 것은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글이 일반적으로 리젠, 즉 첫 화면에 링크된 가장 마지막 최신 글이기 때문이다. 이는 파티장의 분위기에 빗대어 보면 이해하기 쉽다. 수십명이 모여 있는 파티장에서 여러 대화가 오간다고 가정하자. 30분 전 이 파티장에선 남북통일에 찬성하는 여론이 많았지만 30분 뒤 통일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아졌다고 하자. 뒤늦게 이 파티장에 방문한 이가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선 ‘통일 반대’를 중론으로 간주하고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인터넷 게시판이나 댓글창도 이와 비슷한 원리가 작동한다.

리젠을 앞세운 인터넷 게시판은 엉덩이 무거운 이들의 열성적인 발언이 주도적인 여론인 것처럼 보이기 쉽다. 공론장으로선 치명적인 약점이다.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커뮤니티 사이트나 포털을 운영하는 업체들은 소수가 여론을 장악하지 않게 막고, 다양한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이야기가 더욱 주목받도록 알고리즘을 적용하곤 한다.

하지만 특정 메시지의 노출도를 좌우할 수 있는 영향력이 사용자에게 일부나마 주어졌을 때, 공격자들은 제일 먼저 나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그 권한을 점유하곤 한다. 아이피 제한이 걸려 있다면 공격자는 더 많은 아이피를 확보하면 된다. 신뢰도를 얻은 계정에 가중치를 부여한다면 공격자는 그 계정을 사겠다며 연락을 돌리면 된다. 사람 손에 의존해서는 도무지 시간의 벽을 극복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었다면, 공격자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시간을 뛰어넘기도 한다.

최근에는 로봇도 사람인 척하며 온라인에 글을 쓰고, 외국 공작원도 내국인인 척하며 온라인에 글을 쓴다. 아이티(IT) 매체 <와이어드>(WIRED)에 따르면 인종차별 등 혐오성 해시태그를 확산하는 트위터 봇은 무려 270만개에 이른다. 특히 러시아에서 만든 로봇 계정은 미국의 인종갈등을 심화시키는 해시태그를 적극 확산시켰고, 영국에서는 브렉시트를 부추기는 트위트 4만여개를 쏟아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한국에서도 올림픽 경기를 계기로 포털 뉴스 댓글마다 중국발 혐한 댓글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로봇 계정은 지난 정권이 이미 운영한 바 있다. 심지어 극우 성향의 한 지상파 방송사 기자는 자비로 광고비를 결제해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글을 퍼뜨리는 중이다. 한국도 이미, 돈으로 산 여론과 로봇이 쓴 글, 유대를 공유하지 않는 외국으로부터의 악의적인 여론장악 공작이 인터넷 게시판에서 함께 뒤섞이고 있는 상황이다.

댓글 편향성을 두고 시스템을 탓하는 최근 논쟁들의 바탕에는 리젠을 여론인 것처럼 둔갑시키려는 이들의 경쟁이 깔려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의 리젠이나 뉴스 댓글은 그들이 치열하게 세 다툼을 벌인 흔적들에 지나지 않는다. 장밋빛 온라인 민주주의 담론은 이미 끝났다. 엉덩이 무거운 이들의 게임을 위해 서버 자원을 동원하는 것을 ‘인터넷 공론장’으로 부르지 않고, 가치를 돌이켜보는 것에서부터 공론장의 회복은 시작될 것이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