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신의 놀이

음악인이자 감독인 이랑은 ‘신의 놀이’라는 곡에서 자신이 영화를 만드는 일로 신의 놀이를 하려 했던 것 같다고 노래했다. 이야기를 만들어 세계를 만드는 일종의 신이 되는 것이다. 이 곡을 들으며, 예술가들도 그렇거니와 나 같은 개발자들도 비슷한 놀이를 하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누군가 만든 앱이, 또는 웹사이트가 사람들을 모으고, 엮고, 사건을 만들고, 경제구조나 사회를 바꾸어버리는 과정을 우리는 수년째 목격하고 있다. 그러니 개발자나 기획자라 불리는 사람들도 디지털 공간에서 저마다의 세계를 만드는 작은 신들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직장에 속한 개발자들은 저마다의 회사에서 각자 만드는 앱이나 웹서비스에 자부심을 느끼며 작은 신으로 살아간다. 나처럼 큰 회사 울타리 밖에서 더 다양한 신의 놀이를 해보려는 스타트업 개발자나 프리랜서 개발자도 있다. 나는 몇년간 소소하게 돈을 벌고 고양이 사료를 주문해가며, 시간이 날 때면 누군가의 삶에 꼭 필요했던 웹서비스들을 만드는 것을 즐겨왔다. 선거철에는 단가 개념을 잘 모르는 정치인들로부터 큰돈을 받아 그들의 웹사이트를 만들어주고, 그 돈으로 홍대 일대에서 밴드를 하는 친구들의 공연에 보탬이 될 웹서비스를 꾸렸다. 그때까지는 보람찬 신의 놀이를 즐겼던 것 같다.

몇년 전 인디밴드 생태계를 통제하고 싶어 했던 전 정부 관계자들이 나를 찾아왔다. 그들은 티켓 발매 창구를 통제하든, 공연 세금을 통제하든, 어떻게든 밴드 생태계를 통제하고 싶어 했다. 작은 신들이 만든 작은 세계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몇년 전 내가 ‘일베’ 사이트를 빗댄 패러디 사이트를 만들었다가 사람들이 마구 몰려온 일이 있었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차지하고 싶어 했던 정치인들이 줄지어 나를 찾아왔고, 온라인 군중을 자신의 지지 세력으로 만들어달라거나, 누군가를 공격하는 일에 동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신들이 만든 세계는 그저 현실세계 안에 있는 작은 세계일 뿐이었다. 돌이켜보니 내가 그간 해온 신의 놀이는 실은 여러 이해관계자들의 파도 앞에 지은 작은 모래성에 불과했다.

몇달 전 후배가 나에게,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역량을 가져다 쓰고 싶어 하면서도 그들의 포부와 열정은 절대 용납하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다음날 다른 선배에게서도 들었다. 그렇게 진짜 신의 놀이를 즐기는 이들은 따로 있었다. 젊고 어린 신들에게 사다리 또는 동아줄을 흔들며 흥정을 하는 큰 신들이 있다. 작가들에게 힘이 되겠다고 외쳐온 플랫폼, 시민사회의 힘을 모은다던 플랫폼 등, 저마다의 이야기를 꾸미고 작은 세계를 만들어온 작은 신들 위에 올라 그들을 거느리며 더 큰 돈 판을 굴리는 신의 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그들이다.

요즘 큰 신들로부터 기만당한 작은 신들의 분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큰 신 아래에서 다른 작은 신들을 다치게 하는 데 일조한 또 다른 작은 신들이 괴로워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마저도 그들 위에 올라앉은 큰 신의 놀이 중 일부이다. 진짜 큰 신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마저, 이제는 그저 큰 신들이 자비를 베풀어주길 비는 것밖에 못하는 처지이다. ‘세상은 원래 그래 왔어’라는 신의 놀이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작은 신들을 부수는 큰 신의 놀이는 그만 멈추기를 바란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