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미디어 리터러시를
서브컬처 창작자들이 페미니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재교육하는 협회를 직접 만들겠다던 누리꾼을 실제로 본 일이 있다. 그는 서울 노원구에 거주하며 정치사회에 관심이 많은 26살 직장인이라고 밝혀왔다. 그 계정 소유자를 어느 날 지방의 한 고교에서 직접 마주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나는 그를 계속 26살 직장인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가 교복을 입고 학교에서 수업 중이라 한들, 스마트폰을 켜기만 하면 번듯한 26살 유명 온라인 논객이 된다.
지난주 나는 한 누리꾼으로부터 사과문을 받았다. 그는 2년 전부터 내가 메갈리아 사이트를 만들었다는 등의 허위 주장을 펼쳤다고 고백했다. 그는 악성 루머를 퍼트릴 당시 여성혐오 주장으로 유명해진 나무위키의 관리를 맡고 있었고, 12살 초등학생이었다고 한다.
몇 년 전 나는 지하철역 무료 인터넷 피시에 매달려 능숙하게 트위터에 접속해 악플을 쏟아내던 노숙자를 목격한 바 있다. 그는 온라인에서만큼은 산뜻한 프로필 사진을 내세운 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40대 중년 남성들이 온라인에서 18살 여고생을 자처하더라는 일화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포털사이트 뉴스 댓글 작성자를 잘 쫓아가다 보면 오전에는 부산항 하역노동자로 일하는 50대 남성이었다가 오후에는 미국에 이민 간 40대 주부로 사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들이 그렇게 댓글을 남기는 순간만큼은 세계 각지에서 여러 직업군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온라인에서 실제 나이나 정체성과 다른 탈을 쓰는 것을 나무랄 이유는 없다. 새로운 정체성으로 새로운 자아를 얻어 성취감을 얻는 것은 가상세계의 기본 작동원리이다. 직장생활로 지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게임 속으로 들어가 잘 자란 과수원의 과일을 따 시장에 내다 팔거나, 게임 친구들과 공성전을 벌여 적의 성을 점령하는 것도 이제 우리 주변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 그 순간만큼 우리는 스스로 농장주가 되고, 전사가 된다. 어느 유명 교수는 한때 트위터에서 고양이로 살아간 바도 있다.
예명으로 저술이나 저널리즘 활동을 하는 이들도 늘 있었기에 가상의 자아를 내세우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상의 자아가 가상의 정체성을 내세워 신뢰를 가로채 공론장에 진입한다면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여성혐오를 확산시키고 싶었던 12살 어린이가 유명 위키 관리권한을 점유했다. 이곳에서 이퀄리즘이라는 날조된 사상이 학문으로 둔갑해 온라인 여론을 뒤흔들었다. 우리는 이미 지난 대선에서 ‘국정원 온라인 여론조작’이라는 홍역을 치른 바 있고, 최근에는 ‘알파팀’이라는 댓글부대의 정체가 드러나기도 했다. 12살 어린이가 성인인 척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고, 국정원 요원이 시민인 척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다. 아직 우리 사회는 이런 여론조작 문제에 대처할 뾰족한 해법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개발자들이 공론장의 신뢰성을 유지할 만한 검증체계를 꾸준히 만들어낸다 한들 다수의 인력만 동원하면 여론조작은 식은 죽 먹기이다. 결국 독자들이 스스로 글 작성자의 신뢰성을 검토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미디어 리터러시’를 갖추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 믿을 만한 양질의 콘텐츠를 키워가거나 스스로 걸러 찾아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진실보도보다 그럴싸한 음모를 더 소비하는 사회, 팩트체크마저 우리 편인지 남의 편인지부터 따지는 사회에서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반드시 가야 하는 길이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