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금난전권

조선 정조 전까지 금난전권이라는 것이 있었다. 도성 안팎 10리 내에서 국가의 허가를 받은 상인들이 다른 상인들을 내쫓을 수 있는 일종의 독점권이다. 현대에도 이런 금난전권을 누리는 비법이 회자된다. 먼저 아무개 협회를 차린다.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격증이나 인증제를 만들고, 이게 왜 필요한지 이유를 지어낸다. 예컨대 누구나 수제비누를 만들어 아무렇게나 팔게 되면 국민 안전이 위험해질 수 있으니 사전에 믿을 만한 기관이 제품의 안전 여부를 검사하고, 인증마크를 붙여야 팔 수 있도록 단속하자는 식이다. 이후 수제비누 관련 피해 사례를 찾아내어 규제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보도 자료를 언론에 보낸다.

기사가 나갔다면 정부나 국회 인맥을 동원하여 규제 법규를 만든다. 규제가 시행되면 사람들이 알아서 줄을 서서 자격증을 따려 하거나 인증을 받으려 할 것이다. 그때부터는 자격증 발급이나 인증 발급에 수수료를 받는다. 자격증이나 인증에 유효기간을 두어 매번 갱신하도록 하고 갱신수수료까지 받는다면 평생수익의 꿈도 완성된다. 물론 도움을 준 높은 분들이 퇴임했을 때 옮겨갈 수 있는 자리를 협회 내에 만들어 두는 것도 잊어선 안 된다. 만약 협회의 독점지위가 위태로워진다면 얼른 정부 산하 진흥원을 만들자고 한 뒤 이전 경력을 발판 삼아 진흥원 간부 자리로 갈아타면 된다. 새 도전자들의 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권력을 누리는 것은 덤이다.

수년 전, 소프트웨어기술자신고제라는 것이 도입된 적이 있다. 국가 차원에서 프로그래머들의 경력등급을 직접 관리하고 노임단가를 지정하겠다는 취지였다. 시행 당시 초기등록비는 3만원이었고, 해마다 등급 갱신에 만원을 내야 했다. 공인자격증을 따기 전 경력은 절반만 인정한다는 황당한 지침도 있었다. 항의가 빗발쳤고 결국 이 신고제는 폐기되었다.

장자연 사건 재발을 막겠다며 연예기획사 설립을 규제하는 법규도 몇 년 전 생겨났었다. 연예기획사 설립요건에 제한을 두고 경력사항이 없으면 사업을 할 수 없다는 규제인데 유탄은 엉뚱하게도 공연기획 스타트업이나 수년째 활동해온 인디레이블들이 맞았다. 항의가 쏟아지자 박근혜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문화산업 재편이 필요하다’며 당당히 속내를 드러냈다.

승차 거부가 극심한 심야시간대에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콜버스를 운행하려던 한 스타트업은 국토교통부가 수년간 끊임없이 위법이라고 제지하는 바람에 존폐 위기에 몰렸다. 우버·리프트 같은 앱을 택시사업조합과 국토부가 계속 가로막고 있으니 시민들은 앞으로도 승차 거부와 악취로 악명 높은 기존 택시만 어쩔 수 없이 타야 할 것이다. 도처에서 이러니 최근 논란이 된 ‘전안법’에 카르텔 규제, 수수료 장사라는 비판이 즉각 나온 것도 당연한 일이다.

대선 판에서 공인인증서 폐지가 연달아 언급되자 액티브엑스와 공인인증서 관련 보안업체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인터넷 결제 때마다 강제로 설치하게 하던 각종 프로그램들이 사라지면 이들 회사의 살길이 막막해진다며, 공인인증서는 자랑스런 국산 기술이라는 둥 해외에서 전수받고 싶어 한다는 둥 하는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규제의 울타리를 진입장벽 삼아 재미를 보아왔던 액티브엑스 같은 존재들이 우리 주변에 이런 회사나 기관들 외에도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금난전권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 다음 정부에서는 공인인증서와 함께 저 금난전권의 카르텔까지 모두 뿌리 뽑히기를 기대해본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