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구국결사대

‘3·1절 태극기 봉사활동 8시간’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교복 차림으로 시청 광장에 나갔던 고교생들은, 더 이상 ‘나이 먹음’을 연륜이나 존경으로 마냥 연결짓지 않을 것이다.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고교생들을 무리로 데려가 손에 태극기를 쥐여주고는 탄핵 무효니 빨갱이니 하는 구호를 요란하게 외쳐댔다. 고교생들 눈에 그 노인들은 가짜 뉴스에 열광하고 주변에 민폐를 끼치며 거짓에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들 정도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어느 노인은 고교생들에게 ‘노인들이 이 나라를 세웠음을 기억하라. 노인들의 말을 새겨들으라’고 훈수를 두었지만, 그들은 결코 노인의 말을 듣지도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들을 존경하지 않을 것이다.

‘어른들이 우리를 몰라줘요’ 같은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의 서사는 끝난 지 오래다. 21세기 한국은 젊은 세대가 어른의 인정을 갈구하기는커녕, 직접 그들의 추함을 지목하고 고발하며 기억한다. 밴드 밤섬해적단의 명곡 ‘어버이’는 ‘어머니는 부엌에서 일하’건만 ‘아버지는 조국을 지키러 나왔다’면서, 뼈마디에 시린 멸공의 한을 외치러 부인을 두고 집 밖으로 나선 어버이들을 지목했다. 델리스파이스는 ‘노인구국결사대’라는 곡에서 그들을 ‘지혜는 없는 아집’, ‘추한 욕심의 백발’이라 가리키며 ‘저 노인들을 보라’고 노래한다. 젊은 세대들은 ‘가스통 노인’들이 등장했을 때부터 그들을 ‘부끄럽고 추한 무리’로 취급해오고 있었다. 그 사실을 대놓고 이야기하지 않아왔을 뿐, 우리 사회는 이미 ‘어르신’이라고 모두를 존경하지 않은 지 오래다. 방송인 유병재는 한 강연에서 누군가를 멘토 삼으려 하지 말고, 반대로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죽어도 저렇게는 늙지 말아야겠다”라고 다짐하라 권했다. 어른 세대인 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조차 “노인들이 저 모양인 걸 잘 봐두어라”라고 강조한다.

저 경고들이 일부 노인들만 가리킬 뿐이라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사다리를 걷어차버린 장년층과 노인들은 결코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바다 건너 대만과 일본마저 동성결혼을 제도화하고, 페미니즘이 세계 문명의 기본으로 자리 잡았다 한들, 장년층과 노인들은 그런 거 모르고 지내도 별문제 없다. 남편의 성매수를 이해해주는 부인을 칭찬하는 예능 방송을 지상파에 내보낼 수 있는 권력, ‘아재’라며 중년을 미화할 수 있는 권력은 여전히 장년층 남성들의 차지다. 연금체계는 청년들의 더 많은 희생을 담보로 노인들의 안정을 더욱 보장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 젊은이들의 출산·혼인 거부쯤이야 고학력 여성에게 하향선택을 유도하는 선전을 ‘음모 수준으로 은밀히’ 추진하면 된다고 할 정도로, 그들은 젊은이들을 우습게 여겨왔다. 2030 투표율을 다 합쳐봤자 40대 이상을 절대 이기지 못하니 앞으로도 장년층과 노인들은 젊은이들의 절실함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통 젊은이들이겠는가. 조국을 헬조선으로 명명한 유능한 젊은이들은 탈조선으로 그들에게 답한다. 깔끔하게 버리고 떠나는 것이다. 악순환을 깨는 것마저 젊은이들에게 짱돌을 들라 하던 이들이 있었다. 피하지 마라. 젊은이들은 노인구국결사대에 장년·노년층 모두를 투영해 보고 있다. 이제 짱돌은 그들과 같은 장년·노년 세대들이 동년배들을 향해 직접 던질 차례이다. 젊은 세대들은 이미 답을 내렸다. 남은 노인들의 건투를 빈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