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가스와 빨간 마티즈

“뒤집어써서 억울하게 연탄가스 마시고 죽은 애들 안 봤냐.” 지난해 12월 한 월간지가 공개한 인터뷰 녹취록에서 최순실 게이트의 핵심 인물이 말한 것으로 소개된 발언이다. 그가 연탄가스를 언급하는 바람에 그의 연락두절 소식이 나올 때마다 인터넷상에 ‘빨간 마티즈’가 실어간 것 아니냐는 글이 쏟아져 나왔다. 정권의 심기를 건드려 조용히 암살당할 수 있는 처지를 가리킬 때 ‘연탄가스 마시고 죽을 수 있다’ ‘빨간 마티즈가 태우러 올 것이다’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최근 2년 사이 빈번히 발견되고 있다. 이 살벌한 유행어들은 2015년 7월 세상을 시끄럽게 한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각국 정보기관들이 이탈리아의 스파이웨어 개발 업체로부터 해킹프로그램을 구입한 사실이 다른 해커에 의해 유출되어 ‘토렌트’로 배포된 일이 있었다. 이 유출 자료에는 한국의 국가정보원이 지난 대선 즈음부터 약 8억원가량을 들여 관련 프로그램을 구매하고 한국의 메신저 앱인 카카오톡과 한국산 스마트폰에 대한 해킹을 문의한 사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2주도 안 되어, 느닷없이 이 해킹프로그램 구매를 담당했다는 국정원 직원이 장문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숲속 ‘빨간 마티즈’ 안에서 시신이 발견되었고, 그가 연탄불을 피워 자살했다는 경찰의 발표가 이어졌다. 그의 유서에는 내국인이나 선거에 대한 사찰은 없었다고 언급하면서도 관련 자료를 삭제했다는 아리송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며칠 지나지 않아 “유서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비장한 성명이 ‘국가정보원 직원 일동’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사건의 정황들이 온통 석연치 않았기에 세간에는 수많은 의문이 제기되었다. 빨간 마티즈 구입 정황부터 빠른 폐차까지 전 과정이 의문투성이였다. 관련 자료를 지워버렸다는 유서 내용은 증거인멸 시도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정보기관 직원이 단순히 ‘딜리트 키’로 자료를 삭제한 뒤 자살했다고 국정원이 밝힌 점도 황당했다. ‘딜리트 키’로 삭제되었다면 당연히 자료 복구에 몇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 일을, 국정원은 일주일이나 걸린다며 시간을 끌었다. 국정원 출신 국회의원들까지 나서 제3자에 의한 진상조사를 필사적으로 막고, 국정원 스스로 ‘셀프 조사’를 자처한 것도 문제였다. 가장 핵심적인 쟁점, 이 해킹프로그램으로 하필 왜 ‘카카오톡’과 국내 스마트폰을 해킹하려 했는지에 대한 진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연탄가스’ 속에 가려져 있다.

대포폰을 써온 것으로 알려진 대통령은 당시 이 사건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정권 내내 사이버테러를 막겠다며 사건 이후 민간 인터넷망 시설까지 정보기관이 관제하도록 하는 사이버테러방지법을 꾸준히 밀어붙여왔다. 민간 인터넷망 시설 통제권을 국가정보기관이 소유하게 되면 ‘사이버테러 예방’을 이유로 인터넷 사찰 장비를 망 중간에 설치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이는 이탈리아 스파이웨어 개발 업체가 각국 정부에 권유해온 것이기도 하다. 정부는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이버테러방지법 이름을 ‘국가사이버안전법’으로 바꾸어 결국 지난해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했다. ‘연탄가스’와 ‘빨간 마티즈’를 대중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도, ‘빨간 마티즈’ 속 ‘연탄가스’가 집어삼킨 공작의 욕망은 조용히 완성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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