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과 함께 사라질 사이트들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행정자치부가 출산지도 사이트를 만들었다가 항의전화가 쏟아지는 바람에 반나절 만에 문을 닫는 일이 지난주 벌어졌다. 가임기 여성 수의 지역별 순위를 매긴 이 사이트는 출생률 저하 문제에 대처하는 현 정권의 뒤틀린 철학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러나 행자부는 항의 여론에 사과하기는커녕 ‘국민들에게 출산 통계를 알리려고 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놓았다. 사이트를 개설하기만 하면 유익할 것이라는 굳건한 믿음을 그들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다. 2년 전, 내가 만들었던 공연정보 사이트를 고스란히 베끼려던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공연 활성화에 기여하려 했다’는 변명을 내놓은 바 있다. 당시 문체부는 모임 참가를 신청하는 사이트와 공간 대관을 도와주는 사이트, 그리고 공연정보를 모은 사이트까지, 민간의 여러 좋은 서비스들을 참조하여 정부가 직접 사이트를 만들겠다는 야심 찬 사업공고를 낸 바 있다. 이들이 나에게 찾아와 내가 운영하던 사이트의 데이터를 넘길 것을 요구하며 내놓은 설명도 ‘브이아이피(VIP)께서 원하신다’였다. 그들은 설득력 있는 다른 어떠한 정책적 이유도 제시하지 못했다.

몇 년 전 정부는 ‘한국형 유튜브’를 만들겠다며 ‘케이컨텐츠뱅크’라는 사이트를 만든 바 있다. 또 ‘한국형 쿼키’를 만들겠다며 ‘창조경제타운’이라는 사이트도 만들었다.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여행정보 사이트, 제철식품 사이트도 있다. 몇 년 새 대통령의 지시로 생겨난 포털도 여럿 있다. 특히 규제개혁 포털은 대통령이 직접 화이트보드에 도표와 그림을 그려가며 사용자 접근 단계를 줄일 것을 지시할 정도로 기획까지 꼼꼼히 챙긴 사이트이다. 정부가 만든 일자리 포털 서비스는 오늘도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다른 민간서비스들과 동시에 방송광고를 집행하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만든 청년포털이란 사이트는 무료 자기소개서 컨설팅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청년들의 부업 영역인 자기소개서 첨삭에까지 정부가 직접 진출할 정도이니 이번 정부의 ‘사이트 구축’ 욕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짐작할 만하다. 모두 정권 종료와 함께 사라지게 될 사이트들이다.

‘가임기 여성 수의 지역별 순위를 국민들에게 알리면 저출산 해결을 위한 지역별 경쟁이 있을 것’이라는 행자부의 황당한 주장 역시, 그들이 대국민 서비스와 지자체 공무원용 서비스조차 구분하지 못한 채 앞으로도 세금을 축낼 것임을 보여준다. 차라리 공연 관련 사이트 구축 때 ‘좌파 뮤지션들의 활동 사항을 파악해야 해서 사업을 추진했다’고 귀띔해준 문체부 관계자의 이야기가 더 그럴듯해 보인다. 이제 정부3.0을 외친 이번 정부가 만들어낸 사이트들의 성적표를 매겨볼 때이다. 정부 예산을 투입하여 정부만이 가공할 수 있는 데이터를 발굴해내었는지, 아니면 민간의 정보를 수집해 모은 ‘과시용 포털’을 만든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음 정권의 정부 사이트 재편은 복잡한 설명 제쳐두고, 그냥 영국 정부가 만든 ‘고브유케이’(gov.uk)라는 정부 대표 사이트를 참고하라고만 권하고 싶다. 영국 정부의 사이트는 빠른 정보 접근을 위해 첫 화면 상단에 어떤 사진도 배치하지 않았다. 액티브엑스도 당연히 없다. ‘한국형’에 대한 자부심 따위는 이미 끝났으니, 그냥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다른 나라 정부를 참고하기만 해도 큰 진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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