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억이 말에게 건네졌다

사회에 환원되어야 했을 35억이 한 개인의 취미생활과 입신영달 도모에 쓰였다. 35억이 다른 곳에 전달되었다면 할 수 있었을 일을 생각해보자. 일단 올해 저소득층 생리대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이 30억이었다. 이마저도 내년 중앙정부 예산에는 한 푼도 없다. 유기동물 보호소 운영에 드는 예산이 구청당 연간 고작 600만원 선이다. 35억이면 전국의 모든 유기동물 보호소를 개선하고도 남을 비용인 셈이다. 6·25 때 쓰던 수통을 여전히 한국군 장병들이 쓴다며 난리였을 때 수통 전면 교체를 위해 책정한 예산은 고작 13억이었다. 내년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돕는 국가예산이 30억이다. 이것도 41억에서 30억으로 삭감된 것이다. 중앙정부와 갈등을 빚었던 성남시 공공산후조리원 예산이 30억원이었다. 35억이면 큰 스타트업 두어 개가 돌아가는 돈이다. 국내 교육 스타트업이 중국에서 유치해낸 투자액이 35억이었다. 패션 미디어 플랫폼 스타트업이 2년 전 투자 유치에 성공한 금액이 25억이었다. 뉴미디어 스타트업 하나 안착시키는 데에 10억이면 충분하다. 35억이면 한 스타트업이 시장을 새로 개척하고 고용을 창출할 수 있는 규모의 돈이다. 어떤 곳에선 경영인과 수많은 직원이 밤새워가며 겨우 그 돈을 모아 온다. 그 와중에 어느 비선 실세 자제는 ‘달그락 훅’을 위해 35억을 손쉽게 받아낸 것이다. 35억을 누리는 주인공이 남겼다는 글귀, “돈도 실력이야. 너네 부모를 원망해”라는 글귀가 창업의 높은 벽에 힘겨워하는 청년들의 뺨을 매섭게 때린다. 학자금 대출에 시름이 깊은 청년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문화와 스포츠를 진흥한다는 수상한 재단 두 곳이 대기업들로부터 순식간에 800억을 받아냈다. 그들이 진흥시킨다던 문화는 현장에 있는 문화예술계 몫이 아니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집에는 ‘인디밴드 및 뮤지션 창작지원 강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월세가 치솟아 문을 닫은 홍대 공연장이 벌써 다섯이나 된다. 바다비, 씨클라우드, 프리버드, 롸일락, 클럽 타가 작년부터 연이어 문을 닫았다. 800억 정도면 이들 공연장 다섯 곳을 살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2014년 무상보육 대란을 겪은 서울시 영유아 무상보육 예산 부족액이 600억이었다. 재계로부터의 엉뚱한 징발이 없었다면 영유아 보육지원을 위한 재단이 하나 생겼을지도 모른다. 재기하려는 중소기업인들을 위한 재창업 지원 예산 규모가 2015년 700억이었다. 약 9만명의 난임 부부 시술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책정했던 예산이 올해 650억이었다. 다가오는 평창올림픽 스키장 신축 예산이 700억이었다. 이 스키장은 대기업 후원으로 지어져 국가에 귀속되는 게 아니라, 국고로 지어져 대기업 소유로 넘겨질 예정이다.

비선 실세의 입국 후 검찰 수사에 하루 여유가 주어지고 그 시간 동안 실세께서 버젓이 예금을 인출하셨다고 하니 지켜보는 이들로서는 ‘완전범죄’를 목격하는 듯하다. 그들이 손쉽게 얻어낸 돈은 지금도 누군가에겐 너무나도 절실한 돈이었다. 국가를 사유화한 이들을 단죄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이 ‘해먹은’ 돈을 환수하는 데에도 성공해야 하는 과제가 시민사회에 떠안겨졌다. 아이고, 통장잔고 29만원인 이가 골프장에 출몰하는 나라에서 환수를 기대하다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