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
수많은 해킹 사건에서 침해사고를 일으킨 가해자가 지목되는 순간 침해사고의 원인을 유발한 책임자는 책임을 상당수 면하게 된다. 문지기가 문을 열어둔 것을 질책받기 전에, 열린 문으로 들어온 도둑을 잡는 데에 모두의 관심이 쏠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하필 ‘북한 해커부대’라면 한국군이 북한에 쳐들어가기 전까진 가해자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해킹 사고에 책임을 져야 할 모두가 되레 북한 덕분에 만족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사실 보안전문가의 이름으로 ‘북한 소행’부터 외치는 것은 개발자들 사이에서 이제 ‘뻔히 보이는 거짓말’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 거짓말을 진지하게 주도적으로 하는 이들에게는 늘 보상이 주어져왔고, 침묵하는 이들에게는 안전이 약속되어왔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이 현실인지라, ‘전문가’의 이름으로 진실을 덮어 보상을 받을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이야기하고 스스로의 존엄을 찾을 것인지, 지금도 둘 사이에서 갈등하는 분들이 주변에 꽤나 많이 있다.
2013년 3월 20일 국내 주요 방송사의 컴퓨터가 일제히 종료되고 데이터가 파괴되는 일이 있었다. 일명 ‘3·20 사이버테러’로 불리는 사건이다. 방송사 컴퓨터가 일제히 꺼졌기 때문에 가장 요란하게 움직였던 것은 역시 방송사였다. 저마다 테러를 당했다며 속보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전문가라는 사람을 데려와서 분석을 해달라며 마이크를 넘겼는데, 예상대로 대다수 출연진이 북한 소행이라며 범인부터 지목하기 시작했다. 여러 대의 컴퓨터가 한날한시에 일제히 꺼진 현상의 원리와 원인은 그 방면 전문가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또한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지도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을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이는 드물었다. 정보통신 보안 관련 업체나 관련 학계 모두 직간접적으로 정부와 관계를 맺고 의존하는 상황에서, 정권의 뜻을 거스르는 언급을 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 덕분에 진실이 자리해야 할 자리에 ‘북한 소행’부터 외치는 이들이 들이닥치고 말았다. 전문가로서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임에도 큰 용기가 필요한 시기였고,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백남기 농민의 사망진단서를 두고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성명을 내는 서울대의대 학생들, 동문 의사들, 대한의사협회 등을 보며, ‘놀랍고 부럽다’던 동료 개발자분이 있었다.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분야가 우리 사회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던 것이다. 놀라웠다는 그 사실이 새삼 놀라웠지만, 돌이켜보니 우리는 그럴 만한 시대를 살아왔다. 진실을 이야기하는 데에조차 용기가 필요하고, 거짓된 이야기를 하는 이에게 보상이 주어지며, 자신의 양심과 지식에 바탕을 둔 분석이 아닌 누군가가 원하는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것이 ‘전문가의 자질’로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 가는데도 이를 막지 못했다. 너무 많은 거짓말들을 그대로 덮어왔고, 넘겨왔으며, 그렇게 진실을 계속 놓쳐왔다. 그러던 와중에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직업적 사명감을 꾸준히 지키고 있는 이들이 있음을 보여준 분들이 있었다. 거꾸로 가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진실을 언급해준 이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부디 용기 내어 나선 그분들이 지켜낸 진실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