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경단들

재작년 봄, 어느 보수매체 대표가 밥을 사겠다며 만남을 청했다. 여의도의 근사한 일식당에서 만났던 그는 시종일관 나라 걱정에 빠져 있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세뇌교육을 받은 젊은이들, 좌파언론에 휩쓸린 이들이 인터넷까지 차지한 바람에 국정운영이 어려워지고 국가 발전이 늦어지고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였다. 인터넷이 온통 종북좌파세력에게 장악돼 버려 큰일이라던 그는, 나에게 인터넷을 청소할 애국 자경단을 만들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인터넷 애국보수의 상징으로 유명했던 어느 논객은 이제 말을 잘 듣지 않아 더는 돕지 않는다고 푸념하기도 했고, 일베는 너무 위험해져서 버려야 할 카드가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우리 쪽 진영은 절대 고생한 단가를 낮게 잡지 않는다”며 지금까지 자금을 끌어다 지원해왔다는 단체명을 주르륵 나열하였다. 보수집회에 자주 등장하던 청년학생단체의 이름도 그의 자랑 속에 등장했다. “요즘 그 젊은 친구들이 열심히 한다”며 그는 한 청년단체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어디에서 그 많은 돈이 나오느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그러자 그는 이 모든 것이 나라에서 애국하라고 주는 자금이고 다 깔끔히 처리되고 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애국세력을 자처하는 자경단들이 사회 곳곳에서 활개 치던 상황을 우리는 오래전부터 목격해왔다. 단식투쟁을 하던 세월호 유가족들의 천막 앞에서 피자를 나눠 먹으며 ‘폭식투쟁’을 벌인 이들도 있었고,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앞에서 “이제는 일본을 용서하자”면서 위안부 합의 수용을 외치던 이들도 있었다. 2011년 강정마을 해군기지 앞에서 원주민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아세운 이들도 있었고, 2012년 국정원 대선 개입에 항의하는 집회에 난입하며 야당 국회의원을 폭행한 이들도 있었다. 시민들의 연대와 응원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했던 그곳에, 자경단들은 제일 먼저 돌진해 자리를 차지하고 약자, 유가족, 피해자, 야당, 그리고 활동가들을 ‘청소’해왔다. 자경단들 덕분에 지난 수년간 시민들의 연대는 점차 용기와 각오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널리 알려져야 할 약자의 외침은 할아버지들의 구호 앞에 가려지곤 했다. 시민들의 목소리는 관제데모에 가려져 사회갈등의 한쪽 면인 것처럼 그려졌다. 그렇게 그들은 꾸준히 민의를 왜곡하고 시민들을 위협해왔다. 자경단들이 애국의 이름으로 청소한 건 다름 아닌 ‘민주주의’와 ‘시민사회’ 그 자체였던 것이다.

쏟아져 나오는 의혹들을 보다 보니 번지수 잘못 찾아 나에게 도움을 청하였던 그가 문득 떠올랐다. 연줄이 닿아 있어 돈을 당겨올 수 있다고 과시하는 이들은 우리 주변에 늘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연줄이 투명성을 생명으로 하는 곳이라면 이는 부패를 의미한다. 그런 허풍을 늘어놓는 이가 정부 요직에 진출했다면 그것은 허풍이 아닌 공작이 된다. 그 역시 권력의 심장부로 자리를 옮겼었다. 일당 2만원 받던 자경단 할아버지들의 입에서 국정원이니 청와대니 하는 이름들이 튀어나왔다. ‘지시는 받지 않았지만 협의는 해왔다’는 자백도 등장했다. 자경단을 만들고자 했던 이들이 내가 만났던 이 외에도 한둘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시민사회를 향해왔던 그 모든 폭력들이 실은 자경단을 만들고자 노력했던 이들에 의한 작품이었음이 드러났다. 일당 2만원 받았다는 할아버지들은 꼬리일 뿐, 자경단의 몸통이었던 이들에게 더 큰 관심이 모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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