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을 탕탕 내려치며

‘트로피코’라는 게임이 있다. 카리브해 어느 섬나라의 독재자가 되어 국가를 경영하는 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독재자는 국고를 횡령해 스위스 비밀계좌로 옮겨다가 비자금을 조성할 수도 있고, 감시경찰을 두어 불평불만이 많은 시민들을 감시할 수도 있다. 시위를 벌이는 무리를 돈으로 매수해 해산시키거나 총칼로 위협해 진압할 수도 있다. 반란군이 될 가능성이 높은 자를 색출해 납치하거나 처치(?)할 수도 있다. 흥겨운 중남미 탱고 음악을 배경으로 모략을 펼치는 이 게임의 첫 위기는 선거를 치를 즈음 들이닥친다. 물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민주적인 선거를 치를지, 선거 결과를 조작할지, 아니면 선거 없이 장기집권을 할지도 독재자가 스스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정적을 모함하는 선전을 퍼뜨려 상대 후보의 지지율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시민을 찾아 돈을 건네어 지지를 이끌어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지겠다 싶을 땐 투표 결과를 살짝 조작하면 된다.

이 게임에는 독재국가가 행하고 있는 시민 감시체계가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독재자는 시민들의 대화 내용을 모두 엿들을 수 있고, 과거의 발언 행적도 모두 훑어볼 수 있다. 불평불만을 가진 시민을 찾아낼 땐 그의 가족관계, 연인관계까지도 모두 ‘추적’할 수 있다. 독재자로서 그를 처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주변 일가족까지 한꺼번에 샅샅이 찾아내어 몰살시켜야 유리하다. 영장 없는 도청과 추적이 법제화된다면 다시 우리가 마주하게 될 일들이다. 친정권 선동가를 민간 공장이나 회사의 관리자 직책에다가 낙하산으로 내리꽂아 정권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도 있다. 이전 시리즈에서는 텔레비전 황금시간대에 독재자를 칭송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할 수도 있었다. 다음번 시리즈에서는 유력 방송사 사장을 자신의 사람으로 내려보내 진실을 보도하던 기자를 콕 찍어다가 해고시키거나 유배시키는 선택지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또는 인터넷의 발명 이후 온라인 여론을 뒤집을 수 있는 댓글요원을 배치한다는 선택지가 추가될지도 모른다. 이탈리아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해 시민들의 피시(PC)와 스마트폰을 모두 열어본다는 선택지가 추가될 수도 있다. 이것마저도 게임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선가 이미 많이 본 이야기인 것만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에서 독재자가 영구통치의 꿈을 이루기란 결코 쉽지 않다. 민주주의와 정의를 외치는 이들은 끊임없이 저항을 이어간다. 끊이지 않는 시위에 독재자는 시민 지도자를 매수하거나 처치하기를 반복해야만 한다. 그러다 시민여론이 나빠지면 반란군이 결성되어 탱크를 몰고 독재자의 성으로 돌진해온다. 모든 감시수단을 다 동원하고 온갖 모략을 펼치며 정적을 열심히 처치했음에도 이 게임을 승리로 이어가는 것은 정말 어렵다. 반란군의 공격과 시민들의 응원 속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독재자 자신의 성을 바라보며 게임은 끝이 난다. 이쯤 되면 지금껏 먹여주고 재워주며 은혜를 베풀었건만 국민들이 어떻게 이렇게 나에게 배은망덕할 수 있느냐며 책상을 탕탕 내려치고 역정 내는 것 이외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이것도 어디서 실제로 벌어진 일인 것만 같다. 카리브해 섬나라가 아닌 어느 문명국가 대통령도 그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 같다. 그가 부디 게임 속 ‘엘 프레지덴테’와는 다르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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