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관민 거국일치

1937년 중국 대륙을 침공한 일본은 그 다음해 전 국토를 전시체제에 동원하는 ‘국가총동원법’을 제정 공표했다. 이 법 덕분에 일본 정부는 한반도와 대만을 포함하여 전 국토에서 전쟁에 쓰일 수 있는 모든 물자를 차출해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국민들을 잡아다가 전시업무에 투입시킬 수 있었다. 근로보국대, 근로정신대 역시 이 법의 산물이다. 2차 대전에 참전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전쟁 돌입 전후로 이러한 ‘총동원령’을 선포했다. 총력전 개념이 등장한 근대에 전쟁 승리를 위해서는 전 국민을 동원해야 한다는 관념이 자리 잡힌 결과였다. 당시 일본의 구호는 ‘군관민 거국일치’였다.

전쟁이 종식되었다고 하여 ‘총동원’ 개념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언제든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가정하에 동원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다. 한국만 하더라도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을 가정해 민간자원을 징발하거나 인력을 차출하는 연습을 매년 여름 요란하게 치르고 있다. 군 복무를 마친 남자는 예비군과 민방위로 편성되어 매년 동사무소나 훈련장에 불려가곤 한다. 큰 차를 샀다가 ‘전시에 차량을 징발하겠다’는 통지서를 받고 황당해하는 일은 지금도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관련 법규가 30년 전 폐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 중고교생들을 학도호국단으로 편성해 군번을 부여하려다 들통난 것도 불과 10년 전 일이다. 민방위 사이렌이 울릴 때마다 사거리의 통행이 중단되고 국민 모두가 북한의 위협과 국가의 존재를 인식해야 한다는 방송이 펼쳐진다. 지금은 ‘민관군’이라고 부르지만, 박정희 정권이 종식되기 전까지 ‘군관민 협조’라는 표현은 매우 일상적이었다. 태평양전쟁 때 부단히 외쳤던 그 표현이 청산되기는커녕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이다.

20세기 ‘대동아전쟁 승리’를 이유로, ‘멸공’을 이유로, 한반도에서 민간의 자원을 국가가 총동원하려는 시도는 21세기로 접어들며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 총동원의 불씨를 다시 지핀 것은 ‘테러’였다. 수사기관은 테러를 겪은 각국의 특별법을 열심히 참조해 영장 없는 수색 확대를 추진하였고, 정보기관은 민간영역통신에 감청설비 설치를 강제하거나 비용을 보조해줄 방법을 궁리했다. 예고 없이 도심 한복판이나 국가 주요인사를 상대로 벌어질 수 있는 테러에 대비해 일반 시민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가 필요하다며 정부 여당은 기어이 테러방지법을 밀어붙였다.

이제 그들은 관변단체 선전전까지 동원하여 사이버테러방지법 통과를 요구한다. 이 법은 민간 영역인 정보통신 서비스 제공자의 망까지 국가정보원이 관제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번 루트권한(최고관리권한)을 내주면 모든 통제권이 넘어갈 수 있는 정보통신체계의 특성을 고려할 때 매우 위험한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테러 위험을 이유로 영장 없는 실시간 조사권인 ‘관제권한’을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다. 반대 여론 앞에 그들은 사이버테러에 민간 영역과 군, 정부의 영역이 따로 없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 또한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이다. 대동아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며 “군관민 일치국책” 완수에 노력하자던 일본의 그림자, “북괴 오판 망동”에 대비하자며 “군관민 방위태세 철저”를 외쳤던 박정희의 그림자가 지금 한국 인터넷에 다시 드리우는 것이다. 한국 민간 인터넷 사업자들에 적용될 ‘총동원령’ 다음은 무엇일지 알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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