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뷰징 기사 3년 관찰기
2주 전 어느 여배우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어느 언론사는 ‘아무개 교통사고 사망, 과거 새빨간 비키니 입고’라는 제목을 달아두었다. 고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해당 언론사는 이후에도 어떠한 해명이나 사과도 내놓지 않았다. 이미 언론계 전반에 저널리즘은 물론 ‘염치’마저도 사라진 결과다.
신문 기사 제목에 충격, 경악 같은 낚시단어를 반복해서 달아두던 것을 모아 순위를 매기는 ‘충격고로케’ 사이트를 만들었던 게 벌써 햇수로 3년 전 일이다. 그때도 어느 여배우의 자궁암 수술 사연을 전하는 기사 제목에다 ‘자연임신 못해 충격’이라고 써둔 것에 화가 나서 간단히 순위 사이트를 만든 것이었다. 사이트를 선보인 뒤 언론사들이 부끄러워서라도 낚시제목 기사 송고를 자제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되레 한 언론사에서는 경쟁사가 얼마나 더 어뷰징을 하는지 살펴보는 사이트로 잘 활용하고 있었다고 귀띔해 주었다. 낚시제목 1위를 달리던 한 경제지 온라인 책임자는 ‘부끄럽지만 나도 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니 살살 해달라’며 읍소하기도 했다. 순위 집계를 종료한 것도 어느 끔찍한 기사제목 때문이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때 한 언론사가 ‘세월호 희생 여고생 스마트폰 사진에 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던 것이다. 참사의 고통도, 누군가의 슬픈 죽음도 그저 즐거운 소비의 대상으로 다루는 그들은 지금도 자신들이 언론이라고 당당히 주장한다.
낚시기사 앞에서 저널리즘을 꾸짖는 잔소리는 이제 하나 마나 한 소리가 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화여대를 방문했던 지난 10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등의 구호를 들고 대통령의 방문을 저지하려던 학생들과 이들을 막기 위해 사복 차림으로 학교 안에 진입하던 경찰이 충돌을 빚었다. 그 시각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에는 경찰과 이화여대 학생들의 충돌 뉴스 대신 이화여대 출신 미스코리아 연예인의 노출사진 기사가 마구 쏟아졌다. 이 현상은 한국 민주주의에도 좋지 않은 신호다.
저널리즘과 사명감을 자존심으로 삼는 언론사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기자 대상 코딩강의를 갈 때마다 빠짐없이 참석하는 어느 방송사 기자가 있어 왜 또 나왔느냐고 물어본 일이 있다. 진지하게 ‘회사에 가기 싫어서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짧은 답이 방송사 분위기를 단번에 설명해주어 가슴이 먹먹해졌다. 한 일간지 기자가 포털 검색어 순위를 활용해 기사를 작성하는 로봇을 만들려면 어느 정도의 개발비용이 드는지 물어본 일이 있다. 스포츠 경기 기사나 날씨 기사 등에 쓰이던 로봇저널리즘을 포털 검색 결과 유입 트래픽 증대에 써보겠다는 이 잔머리가 단순히 기자 개인의 생각일까 궁금했는데, 회사 차원에서 이러한 로봇 개발을 추진한다는 놀라운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제는 발로 뛰어 정성 들여 쓴 좋은 기사가 로봇들이 쓴 영혼 없는 기사에까지 밀려날 지경이다.
여배우의 죽음 앞에 비키니 사진을 내밀었던 그 언론사는 한반도의 어둠을 물리치겠다는 구호를 자랑스럽게 내걸고 있다. 누가 한반도 민주주의에 어둠을 몰고 왔는지 모를 일이다. 염치마저 없어진 사회에서는 어떠한 비평도 소용없어진다. 사명감 없는 이들에게 저널리즘을 꾸짖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제는 언론이라고 할 수 없는 이들을 시장에서 도태시킬 구조적 방안을 궁리할 차례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