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 전쟁

‘위키’라는 것이 있다. 웹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편집하고 작성할 수 있는 문서 시스템을 의미한다. 위키는 많은 전문가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며 인류의 지혜를 모을 수 있는 플랫폼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하지만 위키는 기대와 달리 전세계적으로 끊임없는 편집 전쟁터가 된 지 오래다. ‘5·18 민주화운동’을 서술한 한국어 위키백과 문서의 경우 수년 전부터 북한 개입설이 추가되거나 문서가 통째로 삭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광주광역시’ 서술에 누군가 홍어 깃발 그림을 올리고 그 그림이 검색결과에 반영되는 바람에, 구글에 광주를 검색하면 대표 그림으로 홍어 깃발이 등장한 사건도 있었다. 대기업이나 정부, 언론사 관련 위키백과문서의 경우 종종 비판적 서술을 지우려는 내부 관계자의 아이피 흔적이 들통나 큰 망신을 사기도 했다. 수년 전 위키백과의 이명박 문서가 찬양 일색으로 바뀌어 누리꾼들이 편집 기록을 열어봤더니 당시 한나라당의 아이피가 튀어나와 편집잠금 조치가 취해진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최근에는 위키백과 외에도 다양한 위키들이 등장했다. 그중에는 여성 혐오에 저항하는 커뮤니티 사이트를 악마로 묘사한 위키 문서도 있다. 이 문서의 악의적인 서술들을 지켜내기 위해 편집을 주시하는 집단이 상주할 정도로 여성 혐오 관련 문서들은 위키에서 가장 치열한 전선이 됐다. 여성 혐오뿐만 아니라 동성애나 외국인 노동자 문제, 일베 등으로부터 표적이 된 인물들을 다룬 문서들 역시 대표적인 위키 전쟁터다.

위키는 함께 모여 지식을 키워가자는 의미에서 편집권을 모두에게 개방한 체계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집단지성의 상징이라는 권위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개방된 권력을 점거해 평가를 독점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 한 권위는 언제든 악용될 위험에 노출된다. 믿을 만한 서술이 모였다 하더라도 언제든 반달리즘의 표적이 되고 만다. 운영진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어떤 위키는 운영진 행사 공지에 초등학생인지라 참석이 어렵다는 댓글이 달려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학생이 인터넷을 검색하면 초등학생이 설명해준 글을 찾게 되더라는 이야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위키백과의 경우 평가나 소설을 쓰지 말고 지식의 출처를 밝힐 수 있는 내용만 쓰라는 지침을 가지고 있지만, 평가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끊임없는 평가 편집 전쟁이 펼쳐진다. 그 외 위키는 말할 것도 없다.

여전히 많은 이들이 위키 문서를 거리낌 없이 믿고 있다. 위키의 서술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은 지금도 여러 전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술의 권력은 언제든 권력의 서술로 탈바꿈될 수 있다는 인류 역사의 그림자가 위키에도 드리워져 있다. 웹2.0 광풍과 함께 인류의 장밋빛 미래로 그려져왔던 집단지성은 10여년 뒤 이렇게 한계를 드러냈다. 파이어폭스 브라우저 등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모질라재단은 웹 리터러시 표준을 발표하면서 신뢰 이슈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제시한다. 첫째, 출처를 통해 정보를 비교하라. 둘째, 저자와 발행처를 조사하라. 셋째, 메시지가 만들어진 목적과 방법을 평가하라. 이 지침들은 비단 웹뿐만 아니라 인터넷 시대에 꼭 갖추어야 할 이해능력이다. 물론 서술권력을 국가가 독점하는 국정교과서 시대, 여러 관점을 두루 살펴볼 여유가 없는 입시몰입 시대에는 되레 알아서는 안 될 이해능력일지도 모른다. 국정교과서 저자를 숨기겠다고 하니 더욱 알지 말아야 할 지침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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