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 선거사이트의 세계

선거철만 되면 몇백만원에 웹사이트와 모바일사이트는 물론 앱까지 뚝딱 만들어주고 홍보 글도 퍼 날라주겠다는 전화가 선거캠프로 마구 걸려온다. 후보자 또는 그 주변인들이 디지털 세계를 다루는 감각을 갖추고 꼼꼼히 판단한다면 이런 후려치기에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넷을 잘 모르는 대부분의 캠프들은 ‘우리도 홈페이지 하나쯤 있어야지’라며 기꺼이 비용을 집행한다. 그렇게 약력 소개 정도만 담은 초라한 사이트가 수없이 탄생하고 유권자를 제대로 만나보지도 못한 채 선거 직후 사라진다. 어느 국회의원은 이전 선거 때 사둔 도메인 주소를 까먹고 선거 때마다 또 다른 도메인 주소를 구입하기도 한다. 한국 정치인들이 바라보는 디지털 세계란 전단지 뿌리고 스팸문자 뿌리듯 온라인 전단지를 뿌릴 공간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그곳에서 유권자를 만나거나 집단지성을 모아보자는 상상 같은 건 없다.

어느 유력 대선주자 이야기이다. 선거를 10일 남짓 앞두고 급하게 후보자 웹사이트를 만들어야 한다며 캠프 관계자가 나를 찾아왔다. 이전 개발업체와 일이 틀어졌고, 선거운동기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며 어떻게든 웹사이트 제작을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사이트 기획서에는 게시판이나 사진첩뿐만 아니라 티브이 방송, 유세일정 달력, 지지여론 중계, 지도에 이동궤적 표시하기 등 무척 많은 기능들이 들어 있었다. 물리적으로 선거가 끝날 때쯤에야 완성될 것이 뻔했다. 고작 1주가량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요란한 웹사이트를 만들어봤자 선거 판도를 바꿀 수 없을 테니 무리한 계획은 포기하라고 권했다. 인터넷에서 화제가 될 만한 간단한 사이트를 만들거나 콘텐츠 홍보에 집중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하지만 캠프 관계자는 번듯한 사이트를 당장 만들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후보자 웹사이트 제작은 유권자들에게 후보를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역별 당협위원회나 홍보조직들이 후보자 당선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는지 전시할 곳이 당장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인터넷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의 공식 웹사이트는 그렇게 선거 때마다 새로 만들어지고 선거 직후 버려져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두차례 선거에서 승리한 데에는 공식사이트 버락오바마닷컴을 충실히 활용한 점도 한몫했다. 지금도 지속적으로 갱신되고 있는 이 사이트는 오바마를 소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민개혁, 건강보험개혁, 여권신장 등 주요 정책을 핵심 화제로 꺼내어 관심을 촉구한다. 각 화제마다 지지자들이 직접 참여하여 글이나 사진을 남길 수 있고, 주변인에게 소식을 공유할 수도 있으며, 직접 참가할 수 있는 지역 행사를 검색할 수도 있다. 캠프는 회원으로 가입한 지지자들의 성향을 분석하여 세심한 타기팅을 기반으로 후원이나 지역 행사 참여를 맞춤형으로 권유하기까지 했다. 미국 전역에서 수백만명이 방문한 이 사이트를 통해 약 20만건 이상의 선거운동 행사가 안내됐다.

한국 정치인들 중 이런 사이트를 꾸준히 운영할 만큼 일관된 정치인이 있긴 할까? 디지털 세계를 디딤돌 삼아 사회혁신을 이끌어낼 한국 정치인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되레 자신들을 지지하는 또 다른 일베를 만들고 싶다며 재능을 기부해줄 정치 신념 있는 개발자를 찾는다는 이야기나 여러 정치권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바이트 낭비 사이트를 또 찍어낼 노력이라면 차라리 다른 노력을 기울이기를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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