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인터넷의 적
대선이 있었던 2012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정보를 집계해 빅데이터 분석을 하던 업체들은 혼란스러운 상황에 직면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각 후보군에 대해 언급하는 글을 집계해 여론 추이를 분석해내던 중, 똑같은 글을 동시에 올리는 수백 수천개 계정들이 등장해 집계에 왜곡이 생긴 것이다. 이들이 쏟아낸 데이터들은 분석 과정에서 일종의 ‘노이즈’로 분류되어야 했지만 어떤 것이 자발적 시민의견인지 또는 조직적 선전인지를 프로그래밍 차원에서 구분짓는 건 결코 쉽지 않았다. 결국 분석 결과를 제공할 기관이 어느 당과 가까운지에 따라 취사선택이 이루어져야 했다. 조직적으로 야당 후보를 비난하는 글을 퍼나르던 ‘알계정’들의 정체는 이후 국가정보원과 국군사이버사령부 요원들로 밝혀졌다.
같은 해, “북한이 남한 인터넷에서 활개치고 다니니 적극 대응해야 한다”며 국정원이 한 유머 커뮤니티에까지 덧글을 남기고 투표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나자,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들이 큰 혼란에 빠졌다. 온라인 게시판에서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이 일반 시민인지 공작요원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집중 공작 대상이 된 유머 커뮤니티는 특히나 여론조작에 대한 민감성이 극대화되었고, 툭하면 상대방을 공작원으로 의심하는 바람에 수시로 다툼이 벌어졌다. 80년대 운동권 프락치 망령이 되살아나 20년 뒤 인터넷 여기저기서 튀어나온 것이다. 자정기능의 기둥이었던 추천 반대 투표체계는 여론조작 공작 앞에서 무기력해졌고, 공동체가 공유해야 할 상호신뢰는 끝도 없이 해체되고 말았다.
이번엔 해킹이다. 이탈리아산 해킹 도구를 한국 국정원을 비롯하여 전세계 금융기업과 각국 정부들이 구매 운용한 사실이 드러났다. 스파이웨어는 정보통신기기의 모든 통제권을 감시자에게 넘겨버린다. 노트북에 달려 있는 캠카메라나 스마트폰의 마이크마저도 나와 내 주변인을 감시하는 장치로 바뀐다. 게다가 한국 국정원이 운용한 해킹 도구에는 와이파이 신호를 가로채어 스파이웨어를 배포하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이제는 친구가 보낸 떡볶이 맛집 링크도 쉽사리 열어볼 수 없게 되었고, 카페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에도 함부로 접속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한국 국정원과 집권여당은 대북 대테러 목적이라며 아예 전국단위 인터넷 감청장비를 설치하기 위한 법률 개정까지 당당히 요구하고 있다. 애인의 스마트폰에 몰래 스파이웨어를 심어 동영상을 찍어 협박했다는 사건뉴스를 볼 때마다 모두들 혀를 찼지만, 그 범인 자리에 국정원의 이름이 오르자 범죄가 아닌 합법적 해킹이라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익명성의 뒤에 숨어 온라인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 했던 정보기관에 대한 단죄는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신뢰를 무너뜨리는 여론조작 활동을 막아야 한다는 숙제는 고스란히 사회관계망서비스 운영업체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구성원에 대한 신뢰도를 회복시키는 숙제도 각 운영업체의 몫으로 떠넘겨졌다. 이제는 우리 곁에 항상 있는 노트북, 스마트폰 등 정보통신기기도 믿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 삶과 함께하는 인터넷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해결할 숙제는 고스란히 세계 시민사회로 떠넘겨졌다. 정보통신이 문명을 구성하는 21세기의 민주주의는 정보 주권의 민주화가 담보되어야 한다. 늘 정보 감시와 맞서 싸워야 한다. 수년째 온라인 시민사회의 신뢰를 파괴하는, 인터넷의 적이 누구인지 이제는 너무나도 명확해졌다.
한겨레 2030 잠금해제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