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스토어고로케 뉴스통신사 낚시사건

살아가면서 누구나 아찔한 실수 하나씩은 할 수 있다. 공장이라면 너트 빼먹은 채로 차가 출고된다거나, 프로그래머라면 디버깅 로그코드 지우지 않았는데 패키징되어 출시된다거나 하는 실수들, 우주선도 볼트 하나 빼먹고 날아오르지 않던가. 물론 그런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실수로 동료들까지 싸잡아 욕먹게 될 수도 있고, 우주선이라면 여러 사람이 죽을수도 있는 일이다. 공장이라면 제품 신뢰도가 추락할 것이며, 개발자라면 개발능력을 의심받을 수 있다. 그리고, 기자라면 기자 이름과 언론사의 신뢰를 망가뜨릴 수 있다. 기레기 라는 단어는 사실 기자들로서는 무척이나 마음아픈 단어이다.

실수가 들통나면 상사나 선임에게 대차게 까일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를 자책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이미 저질러진 실수이니, 개인의 입장에서는 반성하고, 딛고, 다시 일어나면 된다. 다음 번에 좀 더 잘 하면,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개선의 여지를 보여준다면 지난 실수는 만회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조직의 일에서 벌어지는 일의 책임을 한 개인에게 모조리 지우는 것은 과한 일이다. 때문에, 조직 또한 개인의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다양한 시스템/프로세스를 만들어둔다. 보통 제조업이나 IT직종은 이를 검수 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저질러진 실수에 대해선 소프트웨어의 경우 버그패치나 업데이트를 제공하고, 자동차의 경우 리콜을 한다. 하지만 언론직종, 기자라는 직업은 말을 내벹는 직종이라 다시 주워담을 수 없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절차를 밟아야만 한다. 흔히 팩트 체크, 크로스체킹, 데스크검토 라고 부르는 것이 그것이다.

어느 기자가 누군가의 제보를 받고 사이트를 슥 훝어본 뒤 그 내용을 토대로 기사를 썼다. 그런데 다시보니 자기가 완벽하게 그 내용을 잘못 이해한거라 엉터리 기사가 송고된 셈이 되어버린다. 네이버뉴스 덧글에는 깔깔깔 비웃는 덧글이 넘쳐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기자가 한심하다는 글이 쏟아진다. 기자로서는 죽고싶은 기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데스크 보고를 통해 실수를 인정하고, 기사가 더 유포되기 전에 얼른 내리고, 정정하는 기사를 쓰면 된다. 데스크는 신속하게 기사를 내리는 결정을 하고, 네이버나 타 신문사 등 퍼다 쓴 곳에도 삭제요청을 한 뒤, 오보의 원인을 돌이켜보아 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지침을 마련해 공유하면 된다. 기사를 쓴 기자는 관계된 분들에게 민망하고 챙피함을 호소하면서 위로를 호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누구나 살아가면서 몇 번씩은 할 수 있는 실수이니 모두들 마치 내 일처럼 다독여줄 것이다. 가끔 그런 일이 벌어진다. 어느 기자든 그럴 수 있다.

자, 여기 그런 일을 겪은 기자가 있다. 때는 2013년 10월 21일, 애플이 개인 어플 개발자들에게까지 사업자등록번호와 통신판매업신고번호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부의 어플 부가세징수 정책을 둘러싸고 수년 째 잡음을 겪다 느닷없이 벌어진 일에 많은 개인 개발자들이 멘붕에 빠졌다. 대학생 개발자의 경우 사업자등록을 내면 사장님이 되기 때문에 향후 국가장학금 수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일반 직장인 개발자의 경우 취미로 어플을 만들기 위해 사업자등록까지 냈다가는 회사의 겸직금지조항을 위반하는 것이 되었다. 결국 개인 개발자들의 어플 개발을 규제해버리는 정책이 되어버린 셈. 개발커뮤니티마다 말도 안된다 누가 이렇게 한거냐며 항의가 빗발쳤다. 바로 그 와중에 마치 게임 퍼블리싱회사처럼 어플 유통을 대행하는 사업이 흥행하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퍼블리셔를 거쳐야 유통과 흥행이 가능한 시장구조에 종종 좌절을 겪어왔던 개발자들은 백년 일하면 뭐하나 빨리 직종을 옮겨 돈방석에 앉아보자는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어느 개발자는 진짜로 점심 먹고나서 17분만에 ‘앱스토어 등록대행‘이라는 패러디 사이트를 만들어 공개했다. 오후 2시쯤 공개된 이 패러디 사이트는 소스코드를 통째로 넘기라거나, 넘겨준 소스코드로 직접 사업을 할 수도 있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마우스를 가져다대면 ‘뻥’이라는 글자가 나왔다. 물론 신청 버튼을 아무리 클릭해도 ‘Netscape 는 지원하지 않는다. 현재 브라우저버전은 지원하지 않는다’ 라며 튕겨나가는 사이트였다. 게다가 사이트의 로고는 촌티나는 굴림체였다. 설마 하던 일이 실제로 일어나면 이렇게 된다 라는 것을 직접 보여준 이 패러디 사이트는 SNS는 물론 오늘의유머 클리앙 등을 비롯한 다양한 커뮤니티에까지 퍼져나갔고, ‘규제가 잉여창조를 이끌어낸다.’ ‘역시나 창조경제정책이 성공한 것이다.’ 등의 개드립이 쏟아졌다. IT기업 사장님들부터 말단 직원들까지 깔깔 웃으며 어쩌면 현실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경각심을 공유하였다. 유명 커뮤니티 BCPARK 대표님까지 ‘어플 등록 대행해드리겠다’고 공지에다가 드립을 치셨다. 그리고 2시 30분쯤, 애플 iTunes Connect 화면에서 개인 개발자들을 대상으로 요구받던 사업자등록번호,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입력칸이 사라졌다. 갸우뚱했지만 개인개발자들의 분노는 그렇게 사그라들었다.

요란한 헤프닝이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저녁 6시 반 쯤, 국가기간통신사로 지정되어 국고지원을 받는 어느 뉴스통신사에서 <앱스토어 등록대행 불법사이트 주의보> 라는 황당한 제목의 기사가 송고된다. 트위터와 커뮤니티 등지에서 ‘기자까지 낚였네 ㅋㅋㅋ’ 등의 반응이 쏟아져나왔다. 네이버뉴스 덧글에까지 확인 두어번 안해보고 기사를 썼느냐는 비난이 올라왔다. 패러디사이트를 만든 개발자는 조용히 그 언론사에 있는 친구를 통해 ‘패러디사이트가 진짜인줄 알고 낚인 모양이에요..’ 라며 문자로 보내었다. 개발자는 알아서 회사 내 오보 조치 프로세스를 타겠거니 생각했다.

뻥 뻥이라는 문구가 표시되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오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 장난꾸러기 개발자가 이런 사이트를 만들지만 않았어도 나의 기자인생에 오점을 남길 이 사건이 터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을지 모른다. 직접 그 개발자 연락처를 받아내고, 전화를 걸고, 전화 너머 개발자에게 설명을 요구했다. 개발자는 이 사이트가 패러디사이트였고, 뻥이라고 써있고, 덧글에도 모두가 깔깔 웃는 덧글을 남겨놓은걸 확인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미 널리 알려져 구글에 검색해도 다 나오는 사이트라고 설명한 뒤, “패러디 사이트에 어떻게 기자가 낚일 수 있냐고 덧글이 쏟아지고 있는데 빨리 대응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상황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기자는 따졌다. “이런 사이트에 나도 속았는데 일반인도 속지 않겠는가. 당신의 이 사이트가 불법인 것은 아느냐. 뻥이라는 글자가 이렇게 작은데 내가 어떻게 확인할 수 있었겠느냐. 이건 그냥 불법 사이트이다. 진작에 내가 패러디사이트인줄 알았다면 구글에 검색하여 확인했겠지만 난 몰랐다. 취재하면서 그럴수도 있지 않느냐. 이해 못해주겠느냐?” 그런 이야기는 데스크에서 하시고 굳이 나에게까지 이해시키려 할 필요는 없다고 개발자는 이야기했다. 기자는 분노섞인 목소리로 한마디 던졌다 “더 이야기해도 소용 없겠다. 당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 ㅁㅁㅁㅁㅁ 아니냐?”

좀 전에 전화를 그렇게 끊은 것이 마음에 걸린 기자는 다시 전화를 걸어 “방금 전 전화를 끊을 때엔 감정이 많이 상해있었다. 다시 이해를 해주었으면 해서 설명을 하고 싶어 전화했다” 며 자초지정을 길게 이야기했다. 개발자는 물었다. “사이트 정말 확인하고 쓴 기사냐?” 기자는 대답하였다. “세번이나 봤다. 기사쓸 때 봤고, 동료기자에게 연락왔을 때 봤고, 전화 끊고 다시 봤다” 개발자는 물었다. “그럼 사이트에 대해 묘사를 한 내용에서,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난이 있다고 쓴 내용, 실제로는 그런 난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정말 확인하고 쓰신거냐?” 기자는 더 대답할 수 없었다. “오보 맞고, 오보에 대해서는 사과한다. 기자로서 부끄럽고 챙피하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까지 이야기했으면 당신도 아 오해가 있었네요 라고 해줘야 예의 아니냐?” 전화너머 황당해하는 개발자와 감정섞인 이야기가 오간 뒤 기자는 마지막 일갈로 한마디 던진다. “당신 기자에게 이런 투로 행동하면 당신한테 좋을게 없을텐데…” 기자는 챙피함은 둘째치고 개발자와의 통화에서 성질이 머리끝까지 났을지도 모른다. 곧바로 그 개발자가 다니고 있는 회사의 홍보팀 전화번호를 뒤졌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 내용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 직원 말인데요… 이런식으로 하면 귀 회사에 도움이 될리가…”

문제의 그 기사는 신문사가 아닌 통신사에서 작성한 것이다. 한번 썼다간 온갖 신문에서 퍼가는지라 특히나 오보에는 각별히 유의하고 두번 세번 팩트체크를 해야하는 사명감을 지닌 곳이다. (아마 저 기자를 제외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어 특히나 기사 송고에 신중을 기한다. 왜 이렇게 낚인 기사가 등장하였을까? 기자는 패러디인줄 몰랐는데 그게 왜 오보냐 ‘뻥’이라는 글자가 너무 작아 몰랐다 등의 변명을 늘어놓긴 했지만, 사이트 스크롤을 더 내려 하단 덧글에 사람들이 남겨놓은 ‘패러디 재밌어요’ 라는 글귀만 확인했어도 망신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인터넷 사이트를 다루는 기사라면 진위여부 확인은 더더욱 필수이니 스크롤을 끝까지 내리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퍼블리싱이라는 컨텐츠유통구조에 대한 이해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허위 사업자등록은 불법’ 등을 갖다붙이는 황당한 연계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아예 사이트를 자세히 보지도 않고 상상의 묘사를 써낸 정황도 있다. 기자 대신 데스크에서라도 사이트를 직접 방문해서 팩트 체크나 네티즌 반응 확인을 했다면 역시 이런 망신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패러디였음이 뻔히 보였지만 ‘뻥’이라는 글자가 작아서 못보았다는건 주의력 없던 개인은 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기자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자도 데스크도, 기초적인 팩트체크라는 본연의 의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평소에는 너도나도 ‘이에 네티즌들은 … 라는 반응을 보였다’ 라는 기사를 쏟아내면서 네티즌 동향을 찾아내는 언론사가, 막상 이런 중요한 보도에서는 검색도 안해보았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물며 문제의 그 기자가 일하는 곳은 국가기간통신사로 지정받아 연간 300억원의 국민세금을 지원받는 곳이다. 그러니 독자들이 황당해할 수 밖에 없었다.

오보도 오보이지만 이후 기자가 취한 태도가 더 문제일 것이다. 개발자의 회사에다 전화를 걸어 ‘내가 기자인데 말이야…’ 라며 항의를 한 행동은 어지간한 언론사에선 당연히 징계먹을 감이다. 어느 개발자와 기자가 기사를 두고 전화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감정이 상하였는데 이를 두고 기자가 그 개발자가 일하는 회사를 알아내어 전화를 걸어 항의한다 한들 회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사실 아무것도 없다. 회사이름이 거론되거나 회사와 관련이 있거나 개인이름이 거론된 기사였다면 회사에서 조치를 취하는 것이 맞겠지만 그마저도 아니고, 사적 다툼을 두고서 기자가 청탁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기자님이 화나셨다는데’ 를 고려해 정치적 고려를 할 수 있을 터이고, 그 기자는 바로 그 점을 노려 ‘기자지위’를 내세워 압력전화를 건 것이다. 어린이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그런 일을 저지른다면 그것은 유치함이 아니라 법과 윤리의 범주로 넘어간다. 기자라면 스스로의 마음속에 남아있을 기자윤리와 직결된다. 오보 제보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적반하장으로 개발자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탓하였다. 상대방의 신상을 확인하여 재직중인 회사에다가 항의전화를 걸어 ‘내가 기자인데 말이야..’ 라고 갑질을 하는 것은 기자윤리에 명백히 어긋나는 행동이다. 취재목적이어도 문제가 되거니와 취재목적도 아닌 대화 중 기자임을 내세워 협박조로 이야기하는 것 역시 기자윤리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특히나 지난해 불공정 보도 시정과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인 뉴스통신사였기에 더더욱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런 행동을 하는 사람이 계속 기자로 일하는 것은 이 사회에 무척 위험한 일이다. 기자 이름 석자는 이 사건으로 더더욱 널리 알려졌고 해당 언론사에 대한 신뢰도 더욱 떨어졌을 수 밖에 없다. 해당 언론사에서도 수수방관하며 넘겨서는 안될 일이고 기자 역시 독자들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반성해야할 것이다. 데스크 검토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 언론사에서 쏟아져나오는 허위 기사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알아서 걸러 읽는 수밖에는 없다. 물론 매서운 눈초리로 늘 감시하고 꾸짖는 더욱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함도 잊어서는 안된다.

네이버뉴스댓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1) 위 기자는 이전 기사 삭제 없이 종합 기사를 하나 더 송고하였습니다.

2) 해당 언론사는 4일 후 사과의 뜻을 밝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