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네티즌들은... 기사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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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티즌들은…’ 으로 시작하는 여론 지어내기를 가장 많이 하는 언론사가 어디인지 궁금하여 주말 동안 네티즌 고로케 를 만들어 돌려보았다. 가짜 네티즌 여론이 꾸준히 생산되고 있음을 확인하여 다른 분들도 직접 눈으로 보시라고 24일 기점으로 사이트를 공개한다. 이들 코너에는 충격 고로케 때와 같은 경고창을 일단 생략해 두었으니 쉽게 둘러보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4일 기준 1위는 역시 동아일보. 당장 보더라도 맹승지에 대한 기사 송고가 1시간 간격으로 이루어질 정도로 반복송고, 날림송고가 압도적으로 많다.

‘이에 네티즌들은..’ 문구가 기사의 기본 템플릿이 된 지는 한 5년 남짓 된 듯 하다. 과거에도 ‘시민들 반응은…’ 이라는 문구로 시민반응을 직접 인용해 다루는 경우는 있었다. 보통은 시민들의 엇갈린 반응을 제시한 뒤 전문가의 비평으로 마무리짓는 것이 반복되는 포맷이었다. 시민들 반응으로 기사를 두세번 재탕하는 사례는 전 세계 동서고금 막론하고 어디에서나 벌어지는 현상이다. (일본 TV가 이런걸 제일 잘한다!) 이슈가 확산되고 공론화 열기가 고조되고 있음을 지적하는건 의미있는 보도이긴 하다. 오피니언 리더가 아닌 일반 시민들의 반응을 다루는 것도 시민에게 주권이 주어진 민주주의 사회에 합당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네티즌’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보듯, 정체 불명의 가짜 시민을 만들어 여론을 호도하고 선동하는 것 또한 가능해졌음이 드러나 있다. 그런 네티즌의 여론을 언론이 기사에다 인용해 다루는 것은 신뢰성에 있어 당연히 문제가 된다. 하물며 시민의 반응을 제시할 때엔 최소한 실명이나 얼굴이라도 내미는 성의와 용기를 덧붙여 실제 여론임을 입증하는 신뢰장치가 있었지만, 시민이 네티즌으로 바뀐 이후에는 그러한 장치조차 어느샌가 스윽 사라져버렸다. 즉 언론사가 마음만 먹으면 마음껏 여론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네티즌을 빙자해 언론사가 하고싶은 주장을 쏟아낸다는 이야기이다. 그 토대 위에 국정원과 직전 정부는 네티즌을 직접 만들어냈으니 그야말로 접입가경이라고밖엔 할 말이 없다.

소위 ‘네티즌 반응’이란 사실 작문에 가깝다는 것은 이미 언론계에 공공연히 알려진 사실이다. 심지어 스포츠조선은 기사작성 알바생들이 ‘아직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같은 창조적인 문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지양되어야 할 문구가 도리어 고정된 기사 포맷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한 위험은 당연히 ‘왜곡보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네티즌 고로케’를 만들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아래 두 기사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박상도 아나운서 “강용석, 방송으로 이미지 세탁”

“공인으로서 부적절한 언행으로 국회의원 사퇴까지 한 마당에 뚜렷한 자숙이나 반성도 없이 ‘B급 예능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예능 방송인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모습을 꼬집은 것이다.”

한겨레

박상도 강용석 직격탄에 “후련해” vs “배아파?”

” 이에 대한 네티즌 반응도 다양하다. 한 네티즌은 트위터를 통해 … 공감을 표했다. 반면, 또 다른 네티즌은…옹호하기도 했다”

데일리안

박 아나운서가 강 전 의원의 예능출연 행보를 비판한 칼럼을 소개한 한겨레 기사와, 이에 대한 네티즌 논란을 다룬 데일리안 기사이다. 데일리안 기사 역시 박 아나운서의 칼럼 내용을 자세히 다루긴 했으나, 제목에서 그의 주장 요지를 생략한 채 얄팍하게 ‘박상도 강용석 직격탄’ 으로만 요약해버렸다. 어떤 무게있는 주장은 해프닝으로 소비되고, 되려 ‘네티즌’이라는 이름의 다툼전문가들이 나서 저마다의 편을 들며 대리전을 벌이는 형국이다. 난데없이 ‘종편간 언론인 손석희는 그럼 떳떳한가’ 부터 ‘강용석이 뭐 크게 잘못했나?’ 같은, 의도가 뻔히 보이거나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논지들까지 논쟁에 마구 뒤섞어버린다. 한 전직 국회의원의 자숙 부족과 예능을 통한 이미지세탁이라는 본래 화두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누군가 자기 직을 걸고 고민 끝에 용기를 내어 던지는 주장은 이렇게 하나의 독설 쯤으로 재구성되고, 넘쳐나는 네티즌 반응이 그 헤프닝을 가볍게 소비한 뒤, 주장이 화제의 뒷편으로 사라지는 전 과정이 언론에 의해 다시 한번 소비된다. 중요한 사회 아젠다가 이렇게 헤프닝으로 전락하고 만다. 악플을 쏟아내는 키보드워리어와 오랜 시간 지식과 진리 경험을 쌓아온 학자/전문가가 동일 선상에 놓였음은 물론이다.

네티즌들의 덧글은 분명 소중한 여론이긴 하다. 그러나 메타컨텍스트를 다룸에 있어서는 사정이 다르다. 메타컨텍스트가 부각되어야 할 곳이 있고 그러지 말아야 할 곳이 있다. 제사보다 젯밥이 더 주목받아서야 되겠는가? <몇십 몇백줄 되는 기사글>과 <몇줄 안되는 덧글> 두개를 놓고 보면 둘 사이에 성찰의 무게는 분명한 차이를 지닐 수 밖에 없다. 기사/칼럼은 깊은 고민과 성찰, 분석이 수반되는 작업의 산출물이며, 몇줄짜리 덧글은 공감 또는 반발 등의 단편적인 감정을 토해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처럼 ‘찰진 개드립’이 베플에 오르는 나라라면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언론사들은 주장의 본질을 다루기에 앞서, 그 주장과 동일선에 ‘네티즌’이라는 정체불명 집단의 불명확한 반응을 함께 배치하는데에 더 열정적으로 임한다. 경우에 따라선 ‘네티즌 반응’에 더 큰 비중을 실어주고 위 사례와 같이 사안의 본질을 흐트리고 만다.

전문가의 비평이나 분석을 읽은 뒤 그 아래에 있는 ‘저놈 고향이 전라도인가?’ 덧글, 또는 ‘이 기사 한줄 요약해줄게 : 똥인줄 알았더니 진짜 똥이더라 ㅋㅋㅋ’ 덧글과 조우하며 더 이상의 사고/사유를 접는 것이 2013년 독자들의 비슷비슷한 경험이다. 우리가 사유를 접는 순간부터 더이상의 민주주의 사회 여론은 건강하게 형성되기 어려워진다. ‘다수 사람들의 견해가 이렇다던데…’ 로 자신의 견해를 만들어진 여론에 올려태우는 것이 일반적이다. 밴드웨건효과니 언더독효과니 하는 것은 단순 현상이 아니다. 특정 언론사들이 작정하고 ‘조작질’ 할 때 쓰이는 활용 기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언론사가 ‘시민들의 여론은’ ‘네티즌들의 반응은’ 하고 이야기할 때엔 늘 경계해야한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은 그들이 우리를 지배하고자 만지작거리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통계적으로 ‘네티즌들은…’ 을 가장 빈번히 썼다고 해서 ‘네티즌을 사칭하여 여론을 호도한 나쁜 언론사’라고 싸잡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네티즌들은…’ 으로 시작하는 여론 지어내기가 얼마나 뻥으로 이루어졌는지의 정도차이는 기사마다 언론사마다 제각각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네티즌들의 반응은…’에 숨는 기사쓰기는 신뢰성을 갖기 어려운 잘못된 기사쓰기이며, 경우에 따라선 여론 조작도 가능하고, 나아가 사안의 본질을 숨길수도 있는 무기가 된다는 것이다. ‘네티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같은 자의적인 기사를 쓰는 싸구려 언론사도 걸러내야 할 것이고,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아이디 a9373233 는’ 등의 엉터리 NPC를 만들어내는 거짓된 언론사도 걸러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네티즌 여론을 모아다가 중요한 이슈와 동일선상에 배치해 사안의 본질을 흐트려버리거나 숨기려 하는 나쁜 언론사도 걸러내야 한다. 이 것이 네티즌 고로케를 하나 더 만들게 된 이유이다.

어짜피 한국에서 언론의 자유 자체가 날아가버린 마당이다. 사회 주요 아젠다를 지역민은 못보게 하고, 탐사보도 코너를 통째로 없애버리고, 방송사 보도국회의를 국정원이 엿듣고, 기자가 뉴스 대신 옴부즈맨 프로에 나가 보도를 못했다고 토로하고, 중앙일간지 기자들이 용역깡패들에 의해 편집국에서 쫓겨나고 하는 마당에, 낚시성 제목이나 ‘여론 지어내기’ 작문 사례를 모아 주워담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분명한 것은 올바른 보도가 사라진 빈 자리에, 저런 엉터리 기사 함량미달 스팟 기사만 쏟아지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은 일종의 현상일수도 있지만, 언론이 책임을 방기하여 도리어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보너스 : 조선일보의 ‘네티즌들은…’ 활용법

트위터에선 “NLL 대화록 공개는 박영선의 자살골?”

많은 네티즌은 “박영선 의원의 핵폭탄급 자살골”이라는 평이다. … 한 트위터리안은 “박영선 의원이 민주당 최고의 파이터냐. … 자살골이 됐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회심의 자살골을 넣은 박영선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진보의 트로이의 목마’로 추앙받고 있던데…”라고 썼다. 또 다른 네티즌은 “박영선 의원의 자살골은 수차례…”이라고 했고, 다른 트위터리안은 “자살골만 넣는 박영선 의원은 의원직 사퇴해야할 듯”이라고 썼다.”

조선일보아카이브

p.s. 네티즌 고로케는 6월 16일 만들어 돌려본 뒤, 24일 오픈되었다. 이 글 또한 6월 16일 작성된 뒤 23일 재구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