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은 어떻게 왜곡되는가 - 위키피디아 창립자 기사 왜곡의 전말
아래 기사는 IT매체 지디넷코리아가 지난 2월 28일 보도한 내용이다.
위키피디아 창시자 “익명성이 보안위협“ – 지디넷
“정보의 자유로운 공유를 외치고 있는 위키피디아에게 가장 큰 보안위협은 정보의 유출이 아니라 ‘익명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보를 공유하는 만큼 이를 직접 만든 사람들의 저작권을 보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보안이슈라는 것이다. 27일(현지시간) 외신은 위키피디아의 창시자 짐 웨일스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 중인 글로벌 보안컨퍼런스 RSA2013에 참석해 위키피디아의 보안 걱정거리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고 보도했다.”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30228202135
위키피디아 창립자인 Jimmy Wales 가 RSA2013 컨퍼런스에서 한 연설을 두고, 지디넷코리아는 위와 같은 보도를 내보냈다. 익명성이 위키피디아의 보안위협이라니 이게 뭔 소린가.. 싶어 자세히 읽어보니 기사 중반부엔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었다.
그는 보안이 중요한 이유를 정보유출이 아니라 정보를 제작하는 콘텐츠 제공자들의 저작권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 제공자들은 자신들이 공들여 작성한 정보들이 익명화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중략.. 웨일스는 콘텐츠 제작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않고 지식이 유포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로운 콘텐츠의 확대재생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이트에게는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지식에 대한 소유권이 표시되지 않은 채 무차별로 배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러 굵게 강조해두었다. 모두 기자가 쓴 글이지만 까만색은 인용문이고, 강조문은 지디넷코리아 기자의 재해석이다. 일단 위와 같은 글쓰기는 아주 나쁜 글쓰기 방식이다. 누군가의 말을 인용(Quote)하고 그 뒤에 해석을 붙이는 패턴은 왜곡기사를 쓸 때 대표적으로 활용되는 패턴인데, 인용된 문구에 대해 독자가 곰곰히 생각해보기도 전에 기자가 그 의미를 강요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말을 인용해 재해석하거나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이나 전후 과정, 맥락에 대한 충분한 이해와 근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보도기사형식은 그러한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제약이 크기 때문에 더더욱 위와 같은 글쓰기는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되어야 하며 그 해석 또한 ‘~으로 해석될 수 있다’ 와 같이 최소한으로 한정지어야 한다. 하지만 지디넷코리아의 경우 아예 그냥 의미를 재규정하여 Jimmy Wales 의 이름을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해버렸다.
게다가 아무리 봐도 전년도 SOPA 에 거세게 저항하기도 했던 # Jimmy Wales 의 평소 지론과는 사뭇 다른 주장이다. 지디넷이 출처로 밝힌 외신이 어느 외신인지 적시되어 있지 않은 채 그저 ‘외신에 따르면’ 이라고만 되어 있어, 2월 26~27일 RSA2013 컨퍼런스의 Jimmy Wales의 Speech를 다룬 기사를 모조리 다 뒤져보았다. 헌데 아무리 뒤져보아도 콘텐츠 제공자들의 저작권 보호에 대한 Speech는 없었다. 메이저 매체는 아니고 어디 개인블로그에서 따온걸까 싶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콘텐츠, 저작권 과 같은 문구는 문화적 측면에서 해석되는 영어권과 달리 국내에서는 특히 산업적 측면에서 의미를 지니는 용어들이다. 콘텐츠산업에서 콘텐츠는 저작권과 결합되어 보호받아야 할 상품으로 여겨지며 저작권 역시 콘텐츠에 대한 배타적판권을 통칭하는 단어로만 한정지어 사용되는 편이다. 영어권에서 content 라고 쓴다면 text든 image든 여러 의미의 창작물을 의미할 것이고, content 와 결합되는 copyright란 사실 ownership이나 contribute 를 수반한 개념일 것이다. 그렇다면 ‘저작권’ ‘콘텐츠’ 가 아닌 다른 이야기를 한 것을 재구성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뒤져본 기사들 중 아래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Wikipedia founder ‘will never cooperate with censors,’ worries about state-sponsored attacks – VentureBeat “The rise of state-sponsored attacks against companies is something we do worry about,” said Wales in an interview with VentureBeat. “Security is very important for us because if an authoritarian state wants to de-anonymize an account, that’s the type of attack we can expect. Wales said that, while Wikipedia hasn’t completely escaped being poked and probed by hackers on the Internet, it hasn’t been a huge target. Wikipedia doesn’t store credit card numbers or a lot of personally identifiable information. But Wales’ organization does hold information that countries, such as China, have been known to block. People contributing information about topics related to those countries could be interesting targets. http://venturebeat.com/2013/02/27/jimmy-wales-censorship/
이 기사가 지디넷 기사의 출처임이 분명했다. 지디넷 기사 맨 아래에 있는 문구 “웨일스는 또한 RSA 컨퍼런스에 참석해 프라이버시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보안기술 중 ‘암호화’ 기술이 인상깊었다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Wickr’이나 ‘사일런트서클’과 같이 암호화 방식을 적용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애플리케이션(앱)이 인상적이었다는 설명이다.” 는 VentureBeat 기사 맨 아래에 있는 문구 “He said he is impressed with a number of security technologies that support privacy and freedoms of speech. One of them is encryption, which Wales calls “a driver for human rights.” Encrypted messaging apps such as Wickr and Silent Circle are examples of this type of technology” 를 그대로 번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위 VentureBeat의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자. Jimmy Wales 는 익명성이 보안을 위협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라,** 국가지원하에 있는 사이버공격을 우려하며 특히 권위주의(혹은 독재) 국가가 계정의 익명성을 공격하고 있으며 이 위협이 우리가 염두해두어야 할 공격방식**이라 지적한 것이다. 아! 같은 기사를 두고 지디넷은 공격받고 있는 익명성을 공격의 주체로 뒤바꿔 보도한 것이다. 이것은 영어를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니라 일부러 왜곡한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VentureBeat 기사와 지디넷코리아 기사를 순서대로 다시 배치해 해석을 비교해보기로 하자.
VentureBeat
“The rise of state-sponsored attacks against companies is something we do worry about,” said Wales in an interview with VentureBeat. “Security is very important for us because if an authoritarian state wants to de-anonymize an account, that’s the type of attack we can expect.
올바른 번역
웨일즈는 VentureBeat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걱정해야하는 것은 국가지원하에 이루어지는 기업을 향한 공격이다” 라고 말했다. “독재권위주의국가가 계정의 익명성을 해체하는 것을 원한다면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보안문제이며, 예상가능한 공격이다”
지디넷코리아
그는 보안이 중요한 이유를 정보유출이 아니라 정보를 제작하는 콘텐츠 제공자들의 저작권 보호에 초점을 맞췄다. 콘텐츠 제공자들은 자신들이 공들여 작성한 정보들이 익명화되지 않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VentureBeat
But Wales’ organization does hold information that countries, such as China, have been known to block. People contributing information about topics related to those countries could be interesting targets.
올바른 번역
다만 웨일즈의 조직은(=위키피디아는) 정보 차단을 희망하는 중국과 같은 국가와 관련된 정보들을 지키고자 한다. 해당 국가 관련 주제의 정보들을 편집하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은 (중국같은 국가의) 주시를 받는 공격대상이 될 수 있다.
지디넷코리아
다만 웨일스는 콘텐츠 제작자가 누구인지를 알려주지 않고 지식이 유포되는 것은 오히려 자유로운 콘텐츠의 확대재생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사이트에게는 위협이 된다고 밝혔다. 지식에 대한 소유권이 표시되지 않은 채 무차별로 배포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익명의 계정들을 보호하겠다는 위키피디아 창립자 Jimmy Wales 의 인터뷰는 이렇게, 그의 이름을 걸고 익명성이 보안을 위협한다며 지식 소유권 저작권을 주장하는 괴상한 기사로 탈바꿈하였다.
외신 핑계를 대며 왜곡 기사를 내보내는 일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왜곡 보도란 의도를 가지고 작정하고 내보내는 것이다. 가장 최근에도 MBC가 해외 연구사례라면서 “진보주의자는 알통둘레가 작고 보수주의자는 알통둘레가 크다”는 괴상한 기사를 내보냈다가, 기사의 출처인 이코노미스트 원문이 공개되자 비웃음거리가 된 사례도 있다. # 데스크가 검토를 게을리 한 것도 사실이지만, 자기관리 잘하는 건강한 사람은 보수 지향이고 운동 안하는 빼빼마른 놈들이나 야당을 찍는다는 섹시한 구호를 데스크가 원했던 것도 분명 있었다. 지디넷코리아의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Jimmy Wales의 명성을 빌어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익명성이 인터넷을 위협한다 보안을 위협한다 국가를 위협한다 저작권을 지켜야한다 컨텐츠산업을 지켜야한다 라는 종전의 이데올로기에 충실한 기사이기에 데스크에서도 기꺼이 별다른 검토 없이 기사를 그대로 내보냈을 것으로 생각된다. 지디넷코리아든 MBC든 간에 외신을 근거로 왜곡기사가 나갈 경우 1차적인 책임이야 당연히 기사를 쓴 기자의 책임이겠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기사를 검토하고 자신의 책임 하에 송고를 수락한 데스크에 있을 것이다. MBC는 김재철 사장 체제 이후 데스크가 작정하고 왜곡기사를 마구 토해내는 것이고, 지디넷코리아 데스크는 DRM이나 저작권기반 종전ICT산업계를 바라보며 저 기사를 승인했을 것이다. 앉은뱅이 기자들이 주류인 인터넷매체들일수록 빠른 송고 다량 송고를 지향하니 데스크의 역할이 더더욱 유명무실한 것도 사실이다.
정론지를 지향하는 곳이 아닌 이상 왜곡보도에 대한 유혹에 더욱 쉽게 노출되기 쉽상이고 결국 알아서 걸러 읽는 것은 독자의 몫일 수 밖에 없다. 외신을 해석한 기사는 그 매체가 역사적으로 신뢰성을 갖춘 게 아니라면 일단 의심하고 보는 것이 좋다. 그리고. 차라리 영어든 불어든 일어든 공부해서 직접 읽는게 최선의 방책이다.
p.s. 위 Jimmy Wales의 Speech 에 대해 왜곡 없이 보도한 기사로는 경쟁사 디지털데일리 이민형 기자의 기사가 있다. 지디넷과 비교해 읽어보면 칭찬할 만 하다. 최소한 이 기사는 외신을 퍼오는 앉은뱅이 기자가 쓴게 아니라, 신문사가 기자를 진짜로 샌프란시스코에 보내버렸다.